예수의 사랑을 가르치지 않는 성령은 가짜며 사탄의 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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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사랑을 가르치지 않는 성령은 가짜며 사탄의 영이다.
Level 10   조회수 247
2015-07-17 11:59:05

한글킹제임스 성경, 데살로니가 전서 4장 3절~9절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곧 너희의 거룩함이니라. 너희는 음행을 삼가고
너희 각자가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어떻게 자기 자신의 그릇을 소유하는가를 알며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과 같이 색욕에 빠지지 말고
어떤 문제에 있어서도 정도를 지나쳐 자기 형제를 속이지 말라. 이는 우리가 미리 경고하였고 증거한 바와 같이 주께서는 이러한 사람들에 대하여 벌을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은 부정함에 이르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거룩함에 이르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경시하는 자는 사람을 경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그의 거룩한 영을 주신 하나님을 경시하는 것이니라.
형제 사랑에 관해서는 너희에게 쓸 필요가 없으니 이는 너희가 하나님께 몸소 배워 서로 사랑하고 있음이라.

 
------
 
언젠가 내가 썼던 글에서 이런 말을 한적이 있다.
 
[사도요한이 사랑에 대해 이해하고 설명하는 논법과 방법은 사도바울과는 다르다..
바울이 구약의 율법을 통해, 믿음의 증거로써 실행적 사랑을 말했다면, 요한은 바울이 말했던 그 사랑을 실행할 수 있는 원천적이고, 근본적인 능력과 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바로 사도요한의 표현 그대로.. 사도요한 자신이, 보 고, 듣 고, 만지고, 느꼈던, 그 분..
사랑으로,우리를 창조하신, 사랑 그 자체이신 예수로, 사도요한은 사랑을 설명하고 있다.
또한 바로 그 예수가, 바로 그 사랑의 능력과 힘이 되셔서 우리로 자기의 온전한 사랑으로 사랑하게 하시는 원천이요, 근본이심을 사도바울을 보완해서 사랑을 설명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사도바울은 구체적 언급이 없다.
그러나 바울서신 전체적 흐름을 안다면 왜 언급을 안했는지 알 수 있다.
바울서신은, 이미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은 이들을 향해 쓰여진 편지이기 때문에, 사랑의 능력과 힘의 원천이 예수임을 굳이 설명 할 필요가 없었을지 모른다.
]
 
라고 말이다.
 
그런데, 저 말 끝에 비확실 의문형을 완료형으로 고쳐야겠다. 9절에서 나의 저 의문에 답을 사도바울을 통해 주시고 있기 때문이다.
맞다. 초대교회에서는 사랑의 능력과 행함의 주체가 예수이심을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진짜 성령을 받았던 초대교회 성도들은 사도들의 의한 "예수의 사랑"에 대한 가르침과 동시에 8절과 같은 맥으로 성령을 주셔서 그 역사를 통하여 깨달음과 능력이 임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필리아에 속하는 "형제사랑"이란 말은 결코 혈육의 사랑이 아니다. 사도바울이 설명하는 사랑의 논법과 설명을 통해 보면, 예수와 한 몸이 된 성도들은 모두 한몸이란 뜻으로 내 몸에 붙어 있는 지체로서의 사랑임을 알 수 있다.
 
9절 하반절에, "너희가 하나님께 몸소 배워 서로 사랑하고 있음이라".. 이 말을 이해하려면,
요한복음 14장 12절~21절에 말씀을 똑바로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전에, 나는, 이 말씀에서, 12절에, 그 일이란 말의 뜻을, 15절과 연결시켜서 그 일은 사랑의 동외어라고 설명한 적이 있고, 또 그 일, 곧 사랑은, 우리가 행하는 것이 아닌, 예수께서 우리 안에서 성령을 통해 행하시는 것임을 설명 했었다. 그리고 다음 구절들을 통해 그 사랑을 이루고 행하는 능력과 힘으로 성령울 보내주시고, 그 성령을 통해 너희와 함께하여 내가 이루겠다 하셨다고 말했었다.
 
살전 4장 9절도 같은 뜻과 맥락으로 설명 되어져야 한다.
 
요한복음 13장 34절에서 "서로 사랑하라"는 새계명을 주셨고,. 사도바울은 갈라디아서 5장 22절에서 '사랑은 성령의 첫번째 열매'로 확증해 말하였고, 로마서 5장 5절에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라고 분명히 말하였다.
바로 이 맥락에서 '나님께 몸소 배워'.라는 말 또한, 예수께서 성령을 통해, 그 사랑을 가르치시고
행하게 하신다는 사실에 누구도 이의를 재기 할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9절, 사도바울은 하나님께 직접 배웠기에 사랑에 대해서는 더는 쓸게 없다헀지만,
그러면 지금 우리는, 성령이라 믿고 있는 그 영에게서 과연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
방언을 한다해서, 그것이 성령 받은 건가.? 꿈을 꾼다 해서, 그것이 성령 받은 건가.? 환청을 듣는다 해서, 그것이 성령 받은 건가.?

진짜 예수의 영은, 나로 하여금 저희를 위해 저희를 사랑하게 하신다. 나 자신을 위해 살게 하지 않으신다 이 말이다.
오직 예수의 사랑으로 사랑하려는 자에게 예수의 영이신 성령이 함께 하신다.. 그것이 성령을 주시는 진짜 목적이다.
왜냐하면, 이것이 곧 예수의 그 온전한 사랑의 형상을 이루어서 우리의 구원을 완성해가시는 과정과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 사랑의 형상의 완성에 대한 저 과정과 저 방법이 없이는 구원은 없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보지못하고 믿는자가 복이 있다.".라고, 이 말은 이적과 표적을 포함한 모든 신비적 사건을 말씀한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바라보고, 따라가야 한다. 왜? 전에도 말했지만, 그 말씀이 곧 예수이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내가 사랑한 그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라." 하셨고, 그 사랑의 행함의 능력으로 성령을 주신다 하셨는데, 오늘날 그렇게도 성령 충만을 외쳐대지만, 성령이라 믿고 있는 그 영이, 과연 예수의 사랑을 가르치고, 그 사랑으로 죄를 알게 하고, 그 예수의 사랑을 행하게 하는가.?
만약, 그게 없다면, 그 영은 성령이 아닌, 사탄의 악령이다.

예수의 사랑을 가르치지 않고, 그 사랑으로 나의 죄를 깨닫게 하지 않는 성령은 가짜이며, 사탄의 악령이란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영 분별 똑바로 하자.
 
분명히 말하지만, 예수의 사랑은, 내가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면 쉽다.
내가 죽지 않았기에 어렵고 힘들게 보이고 느껴지는 것이다.
 
육체의 약함과 그로 인한 제한을, 그 핑계로 죄를 정당화 하거나, 합리화의 도구로 사용할 수 없으며, 그래서도 안된다.
왠줄 아는가.? 예수께서 우리와 똑같이 육체의 약함과 육체의 제한 그대로 오셔서, 타락 이전의 인간의 삶을 사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으로써가 아니라, 당신의 피조물로써 우리와 똑같은 고통의 죄의 육체와 모든 감정과 느낌으로 모든 유혹을 다 받으며, 창조 당시에 우리가 살아냈어야 했던 그 삶을 우리가 되어 사셨기 때문이다. 우리와 똑같은 죄의 육체로 말이다.
 
때문에, 내가 죽어 없어지고, 예수가 우리속에 살아계시고, 그 분의 말씀이 우리안에 있다면,
우리도  그 사랑과 똑같은 사랑으로 사랑하며 살 수 있다.
그 말씀이 곧 예수이시며, 능력과 힘이기 때문이다..
 
신명기 30장 11절~14절..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이 명령은 네게 가려진 것도 아니고 그리 먼 것도 아니며,
그것은 하늘에 있는 것도 아니니 네가 말하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서 그것을 우리에게로 가져와 우리로 그것을 듣고 그것을 행하게 하랴?" 할 것이 아니며,
그것은 또한 바다 건너에 있는 것도 아니니 네가 말하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그것을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로 그것을 듣고 행하게 하랴?" 할 것이 아니니라.
오히려 그 말씀은 네게 아주 가까워 네 입에 있고 네 마음에 있으니 너는 그것을 행할 수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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