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진짜 목사님을 찾습니다..

미션 스페이스

글보기
예수의 진짜 목사님을 찾습니다..
Level 10   조회수 472
2013-06-11 10:49:18
 
 
10:1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양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길로 넘어들어 가는 자는 도둑이요 강도라.
10:2 그러나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10:3 그에게 문지기가 문을 열면 양들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러면 그는 자기 자신의 양들의 이름을 불러서 이끌어 내느니라.
10:4 그가 자기 양들을 이끌어 낸 후 양떼 앞에서 걸어가면 양들이 그를 따라가나니 이는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알기 때문이라.
10:5 그러나 그들이 낯선 사람은 따라가지 아니하고 오히려 그에게서 달아나나니, 이는 그들이 낯선 사람의 음성을 모르기 때문이라."
10:6 예수께서 이런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시더라. 그러나 그들은 주께서 자기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니라.
10:7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들의 문이라.
10:8 내 앞에 온 자는 다 도둑들이요 강도들이라. 양들이 그들을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10:9 나는 그 문이라.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가면 구원받을 것이며 또 들어가며 나오며 초장을 찾으리라.
10: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살인하며 멸망시키려고 오지만, 내가 온 것은 양들로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
10: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생명을 내어 놓으나
10:12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들도 자기 양들이 아니므로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들을 버려 두고 도망치느니라. 그리하여 이리가 양들을 채가고 흩어지게 하느니라.
10:13 삯꾼이 도망치는 것은 그가 삯꾼이기 때문이며, 따라서 양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느니라.
10:14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도 나를 아나니
10:15 이는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나도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으니 나는 양들을 위하여 나의 생명을 내어 놓느니라.
10:16 또 나에게 이 양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있어 내가 그들도 데려와야 하리니, 그들도 나의 음성을 듣게 되리라. 그리하여 한 양떼에 한 목자만 있으리라.
10:17 이로 인하여 내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나니 이는 내가 생명을 다시 얻기 위해 나의 생명을 내어 놓기 때문이니라.
10:18 아무도 생명을 내게서 빼앗을 자가 없으나 내 스스로 그것을 내어 놓느니라. 나에게는 생명을 내어 놓을 권세도 있고, 또 그것을 다시 얻을 권세도 있노라. 이 계명은 내가 내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것이니라."고 하시니라.
(킹제임스 성경, 요한복음 1장 1절~18절)

-------------
 
위에 9절에서 예수는 말씀하신다... "내가 그 문이다"..라고..
 
그런데...
한국 교회 목회자들은 자기네 교회 자체가 천국문이요.  자기 말이 곧 하나님의 말이니 따라야 하고,
그 말을 안따르거나 그 교회를 안나가면 벌 받는다는식으로 가르치고 있다.
과연.. 그런 방식의 목회가.. 예수.. 그 문으로 들어가게 인도해 줄 수 있을까.?

내가 인천 박촌동에서 살 때,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까지 아버지를 모시고 어머니가 다니시던, 동네 모교회 (지금은 인천 동양동으로 이전) 담임 목사가
설교는 자기 배운데로 하기에 잘 하지만, 자기 부인이 둘쩨 아이를 임신하고 있던 시기부터 5년 이상을
젊은 여신도들에게 각자의 형편에 맞지 않는 금액의 작정헌금을 내라고 요구했고, 그 돈을 안내면,
그럼 안내는 대신 벌받지 않으려면 자신과 성관계 가져야 한다고 강요해서 수십명과 그 짓을 하다가
나중엔 장로 며느리까지 건드려 놓고,
결국 그 동네에서 소문이 다 나서 청년들을 비롯해, 권사 집사 평신도 해서 그 사실을 아는 사람들 70~80명이
다 빠져 나가니까 그 동네에서 목회를 못하게 생겨서 동양동으로 이전한 일이 있었다..

제대로 성령의 인도하시는 체험도 없이 그져 지식과 경험으로만 직업으로 목회를 하려드는 목사들..
특히 삶의 모습은 어찌됐든 무조건 예수만 믿으면 천국 간다고 가르치는 칼빈주의를 따르는 장로교회 목사들...
평신도인 우리가 진짜로 직시해서 주위깊게 봐야 되고, 조심하고 피해야 될 이들이 그들이다..
십일조와 헌금만 강요한다면 더 조심해야 된다..
이 글을,, 그 교회 관련 되어 있는 전도사들 및 당사자가 보면, 내게 모함한다고 난리를 치겠지만,
우리 어머니가 그 교회를 안다니시게 된 원인이 교인들이 교회를 다 빠져나간 이유를 아시고난 이후란 사실이다.

그런 목회자들을 향해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도둑과 강도와 삯꾼..이라고..
성도를 위해 자기를 내어주지 않는 목사들... 그들이 도둑과 강도와 삯꾼이다...
내가 의문을 품는 것은... 과연 그런 삯꾼 목회자에게서 나온 말이 복음으로서의 능력과 힘이 발생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다시말해, 그런 목회자가 전하는 설교가 과연 그 문이신 예수안(천국)으로 인도하는 길이 되어줄 수 있느냐.? 라는 말이다..
예수를 따르고 전하는 목회자의 삶의 모습이 그 어떤 설교보다 한사람을 구원하는 가장 큰 힘과 원인이 되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혹자는 내게 말 할 것이다.. "목사도 사람 아니냐?"..고 말이다..
그렇다.. 사람 맞다..
허나, 그것은 예수와는 아무 상관 없는 타락한 옛인간일 뿐, 예수로 거듭난 새사람은 아니란 것이다..
그런 상태로 있는 목회자가 전하는 말은 자기 배운데로의 지식만을 전하는 교양강좌일 뿐. 성령의 의한 진정한 설교로서의 능력은 없다.
"목사도 사람 아니냐?"는 말은 예수님 앞에서는 결코 안통한다.
다른 사람들을 천국문인 예수께 전인격적인 삶으로 보여주며 인도해야 할 목회자란 사람이 저런짓을 한다는 것은, 
예수로 거듭나지 못한 상태로 교회를 잇끌고 있다는 반증이기 때문에, "목사도 사람 아니냐?"..는 말은 변명꺼리도 안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목회자 밑에 있는 교역자(전도,강도사)들의 한가지 특징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온라인상에서 자신을 소개하는 소개란에
자신이 몸 담고 있는 해당 교회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없을 뿐더러, 자신이 예수 믿는 사람인지 아닌지에 대한 흔적조차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자.. 이런 교역자들 밑에서 설교랍시고 듣고 있는 사람들이 과연 구원 받을 수 있겠는가.?
 
헌데.. 한가지 이상한 일이 있다..
이번에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만들고 보안 때문에 휴대폰인증을 위해 폰 번호를 페이스북쪽에 등록하고 들어가 보니까.
"알 수도 있는 사람들"..이란 목록에 위에서 언급한 그 교회에 교역자로 있는 강도사가 표시 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말은, 그 사람 핸드폰에 내 폰번호가 등록되어 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사람쪽에서도 여테 내 페이스북이 노출 되고 있었다는 말인데.. 확고하게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혹시 하는 생각에 그 교회와 관련된 사람들은 페이스북에서 찾아서 전부 차단해 버렸다..
사실, 그 강도사, 나보다 일곱살이나 어리고, 첨부터 교회에서 내게 반말을 했던 바로 그 사람이다..
 
그 교회에서 금요철야 시간에 같이 읽으라고 코팅까지 해준 기도문을 보면, 결코 그 교회가 정상적인 교회는 아니란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 기도문에 이런 내용이 있던것을 기억한다.
 
"하나님을 대언하는 목사님의 말을 불순종하는 무리들에게 저주를 내려주소서"...
 
자.. 이게 정상적인 교회인가.? .. 바로 이런 사람이 도둑이요 강도요 삯꾼이다... 대체 누가 주인이며, 누구를 믿으라 하는가.?
예수님인가.? 가짜 목사인가.?
평신도들도 진정 자신을 위해 구원에 길로 가고 싶다면, 성경을 통해서 바로 이런것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
 
요한복음 10장 15절에서, 예수님은.. "나는 양들을 위하여 나의 생명을 내어 놓느니라."..고 하시면서 이어서 18절에 말씀히신다..
"나에게는 생명을 내어 놓을 권세도 있고, 또 그것을 다시 얻을 권세도 있노라. 이 계명은 내가 내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것이니라."..라고..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서 봐야 할 단어가 있다. 자신의 생명을 놓고, 얻을 수 있는 "권세(권리)".란 단어와 "계명(말)"..이란 단어다..
어쩨서 권세란 말과 계명이란 말을 지동이어(志同二語)로 쓰고 계시는 것일까..?
 
이 말씀은, 다음 여섯개의 구절로 해석해야 명확 할 것 같다..
 
요 12:50 나는 그 분의 계명이 영생임을 아노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는 것은 무엇이나 아버지께서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이르는 것이라."고 하시더라.
요 13:34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이는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 14: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들을 지키라.
요 14:21 나의 계명들을 가지고 그것을 지키는 사람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니,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나의 아버지께 사랑을 받으리라. 또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 사람에게 나 자신을 나타내리라."고 하시니라.
요 15:10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들을 지켜서 그 분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나의 계명들을 지키면 나의 사랑 안에 거하리라.
요 15:12 이것이 나의 계명이니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라.
 
킹제임스 성경엔, 요한복음에 계명이란 단어가 한번 더 나온다.. 12장 50절...
며칠 이따 이 부분은, 더 자세하게 설명을 하겠지만, 12장을 깊히 읽고, 다음 13장으로 넘어가면, 왜 지동이어(志同二語)로 쓰셨는지 알 수 있다..
요한복음 12장 44절~50절에 예수께서 말씀하신 "내 말"..이란 단어의 뜻은 곧 예수의 계명이다.. 다시말해 13장 34절을 말씀하시기 위한 서론이란 것이다.
예수님은.. 12장 50절.. "나의 말은 모두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고 그것을 그대로 전하는 것이다".. 라고 하신다..
그리고, 13장 34절에서 새 계명을 주신다... 바로 이 두 구절을 연결시키면, 15장10절과 같은 뜻이 된다...
 
예수께서 아버지께로부터 받으신 계명으로 우리에게 계명을 주고 계심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아버지의 계명도 사랑이요. 예수님의 계명도 사랑이다..
이 부분은 다음에 자세히 말하겠다...
 
오늘 생각할 부분은, 예수님은 사랑을 무엇이라 정의하고 계신가 이다...
10장 18절에서, 우리를 위해 목슴을 내어 놓는것이 권세라 하신다. 그러면서 그 권세는 곧 아버지께서 주신 계명이라 하신다.. 계명..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계명과 예수님의 계명이 다른 것인가.? 아니다.. 위에서 간략히 설명 했듯이.. 아버지의 계명도 사랑이요. 예수님의 계명도 사랑이다..
자.. 그렇다면, 내가 하려는 말이 무엇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진정으로 누군가를 위해 자기를 내어놓는 사랑... 그것은.. 희생도 의무도 아닌.. 존재의 권리이며 특권이다..
그것이 예수님의 사랑이요. 우리에게 주신 계명 곧 사랑의 존재로서 창조 되어지고 회복 되어진 사람의 특권과 권리이다..
그런데, 그 계명을 지키지 않는다면, 자신에게 허락 되어진 사랑의 존재로서의 권리와 특권을 버리겠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다시말해, 예수의 서로 사랑하라는 저 계명을 지키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구원하심의 그 사랑을 거부한다는 말이 된다는 것이며,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버리겠다는 말이 된다는 것이다.
 
나는 결코 포괄적인 무조건 사랑을 말하지 않는다.. 예수.. 그 분의 사랑이 아니면 다 거짓이기 때문이다..
자.. 바로 이 사랑으로 가짜를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의 사랑이 아닌 자기를 위해 거짓과 가짜로 사랑하는 척하는 이들을 말이다.
그 대상이 목회자가 됐든 평신도가 됐든... 그럴 수 있어야 하는 이유는.. 나의 구원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명심하자, 예수의 사랑이 아닌 것은, 언젠가는 내게 해로 다가 온다는 것을...
댓글
자동등록방지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입력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