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에 못박아야 할 것들.. 거기에 죽어야 할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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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 못박아야 할 것들.. 거기에 죽어야 할 것들..
Level 10   조회수 423
2014-02-17 09:05:11


[참고 말씀]
 
마 10: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고 나를 따르는 자도 나에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마 16:24 그때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막 8:34 주께서 무리를 제자들과 함께 불러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눅 9:23 또 그들 모두에게 말씀하시기를 "누구라도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눅 14:27 또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고 나를 따라오는 자는 나의 제자가 될 수 없느니라.


요 19:17 주께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히브리어로 골고다, 즉 해골의 장소라고 하는 곳으로 가시니라.
 
요 13:34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이는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 13: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것으로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나의 제자인 줄 알리라."고 하시더라.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으나 그럼에도 나는 살아 있노라.
           그러나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이라.
           내가 이제 육신으로 사는 삶은 나를 사랑하시어 나를 위해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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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십자가와 고난을 말할 때, 자신이 원하지 않는 사건을 만나거나, 자신이 의도하지 않는 힘겨운 일과 마주쳤을 때,
또는 행위에 옳고 그름을 불문하고, 자신이 당면한 모든 부정적인 결과들에 대해 그것을 십자가니 고난이니 라는 말로 치부하려 든다.
 
그러나, 위에 말씀을 깊이 들여다 보면, 결코 그런 류를 십자가 또는 고난이라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자기 부인'은 무엇이며, '자기 십자가'란 무엇일까..?
이 질문의 해답은, 창세기 2장에서부터 이미 우리에게 주어져 왔던 해답이다.
 
창 2:16 주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명령하여 말씀하시기를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을 네가 마음대로 먹을 수 있으나
창 2:17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에서 나는 것은 먹지 말라. 네가 거기서 나는 것을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는 자기와 똑같은 형상으로 우리를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마태, 마가, 누가.. 공간복음들이 증언하는 예수님의 저 말씀들은 그져 단순히 막연하게 '나를 따르는 것은 고난을 감수해야 한다.'..는
그런 단순한 의미가 아니다.
 
"누구라도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이 말씀은, '창 2장 16~17'를 말씀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심정과 소원이 그대로 담겨 있는 말씀이며,
하나님 자신의 본질적 모습과 그것을 그대로 닮아서 끝까지 보존하고 유지했었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한 우리의 현주소를 알게 하시는 말씀임을 깨달아야 한다..
 
다시 말해. 예수께서 보여주신 모든 언행은 그 안에 창조주인 당신의 심정과 우리를 향하신 그 분의 소원이 들어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미 창세기의 저 말씀을 설명하면서, 수차례 반복해서 말 한바 있다. ( “ 빛이 있으라 하시니... ”  <= 링크 클릭.)
저 말씀은, 하나님의 형상(사랑)으로 그대로 똑같이 창조된 사람은 본질적으로 처음부터 선악을 구분할 수 없었고,
자기를 위해 선악과를 먹는 자애(自愛)의 악을 행하므로 타락하게 되었고, 자기를 사랑하는 그 모든 것이 죄 그 자체라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는
말씀이란 것을 말한적이 있다..

그런데 오늘은, 창세기의 저 말씀과 연결시켜서 4복음서에 기록된 예수께서 말씀하신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묵상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예수의 제자됨의 삶을 다시한번 더 생각하고자 한다.
 
첫번째.. (자기 부인이란 무엇으로 부터의 부인인가..?)
이것은 단순히 인간 각 개인에게 주어진 모든 성향.. 즉 성격, 생각, 습관, 식욕, 성욕, 입맛, 체질과 같은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고유 특성을 부인하라는
말씀이 아니다..
즉 have를 부인하라가 아니라. have의 동기와 그것을 사용하는 목적을 'for me'에서 'for you'로 바꾸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자기 부인의 시발점이기 때문이다.

누가복음에는 빠져 있지만, 마태, 마가 복음은 예수께서 왜 저 말씀을 하셨는지에 대한 원인이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다름아닌, 십자가를 지는 고난을 통해 죽임을 당하고 부활 하실거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자신의 인간적 욕심으로 만류했던 베드로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한번 생각해 보자.. 나와 당신의 그 속에 베드로가 보이지 않는가.? 자기 영리영달을 위해서.. 자기 유익을 위해서..
자기 십자가를 부인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이것이 사탄의 속성이며 타락의 속성인 자애(自愛)에 붙잡혀 있는 나와 당신의 모습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자기 부인'..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타락의 모든 의도와 의식과 행위를 부인해야 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타락 이전에 참된 하나님의 그 형상을 회복하려면,(나를 따르려면) '사람의 일'인 자애(自愛)를 부인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하늘의 일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일'..이란, 사람의 육체에 하나님이 허락하신 고유 특성을 말하는게 아니다. 그것들 자체의 욕구 축족을 위한 목적을 말씀하는 것이다.
 
생각할 수 있는가.? 나를 생각하지 말고, 다른 사람을 생각하라.
배가 고픈가.? 허기짐을 면하기 위해 먹지 말고, 내 힘으로 도움을 줄 사람들을 위해 건강하라. 그러기 위해 맛있게 잘 먹어라.
성적 욕구를 느끼는가.? 허무를 느끼는 사욕을 위해 채우지 말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마음을 얻기 위해, 더 큰 사랑을 주기 위해,
내가 사랑해야 하는 또다른 존재인 아기를 위한 선물임을 잊지 말라..
입맛이 다르고, 체질이 다른가.? 그것은 당신을 사랑하는 누군가가 그것에 마춰줄 것이기에, 당신도 당신과 다른 그에게 마춰줘라..
 
바로 이것이 자기 부인이며, 내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하신 예수의 그 사랑으로 사랑하는 하늘의 일이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자신과 전혀 상관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인간을 위해서 자기의 하나님 되심을 부인하시고 죽으셨다. 나를 위해, 당신을 위해..
창조주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나와 당신을 위해 자신을 부인하시듯이, 나와 당신도 예수의 그 사랑으로만 사랑하므로 자신을 부인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며, 하나님의 일이다..

그런데.. 예수를 따른다 말은 히고, 교회 봉사니, 전도니, 각종 헌금이니, 각종 집회에는 참석 하면서도.. 이것들을 하는 근본 목적은
나 하나 복받기 위해서 한다면, 그것이 과연 자기 부인에서 나온 행위인가.? 시간을 드리고 돈을 드렸으니 자기 부인이다.?
아니.. 단호하게 말하지만, 그것은 자기 부인이 아니다. 자신을 위해서 하나님과 다른이를 이용하는 것 뿐이다.
그것이 타락의 속성인 자애다..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은.. 내가 예수의 사랑을 이렇게 말하고 있기에 그것을 그대로 행할 수 있을 것이다. 라는 막연한 추축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허나.. 분명히 말하지만,, 나도 아직 멀었다.. 내가 행하는게 아니기 때문이며, 내가 스스로 온전히 행할 수 있는 사랑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도 다만, 당신의 그 사랑을 내 안에서 온전히 이루시고 행하게 하시는 예수 앞에 작디작은 순종을 드리려고 애쓸 뿐이다.
사도바울의 고백 그대로 나도 아직 예수를 향해 달려갈 뿐, 온전히 이루지 못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게 '나' 요나단 성진이다..
 
두번째..(자기 십자가란 무엇인가.?)
사탄의 사랑인 자애(自愛)로 인해 타락하고, 바로 그 거짓 사랑 자애가 속성과 본능이 되어버린 타락한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론 그 자애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거기서 벗어나려하면 할수록 벗어나려는 그 행위 자체가 결과적으로 또다른 모양의 자신을 위한 사랑으로 들어날 뿐이기 때문이다..
그것 자체가 하나님의 사랑 앞에서 죄다.. 바로 이것이 영적 전쟁이다.. 타애(他愛)인 하나님의 참사랑과, 자애(自愛)인 사탄의 거짓 사랑의 싸움.. 말이다..
 
전쟁은 어느쪽 하나가 죽어져야 끝이 난다.. 내가 죽든지 상대가 죽든지 어느쪽 하나는 반드시 죽어야 끝난다..
십자가는 죽음이다.. "요 19:17 주께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히브리어로 골고다, 즉 해골의 장소라고 하는 곳으로 가시니라."..
예수께서 달려 죽으신 십자가는.. 거짓인 우리를 참으로 만들어주기 위해 자신의 참사랑을 죽인 자기 부인이다..
 
의인이 죽어야 죄인이 자유로워지고, 참이 죽어야 거짓이 산다..
그런데.. 예수의 참사랑은 자기가 죽음으로 사탄의 거짓 사랑을 같이 죽여버렸다. 진짜 참사랑은 자기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참사랑인 창조주 예수가 죽으셨다.. 그로 인해 거짓 사랑은 더이상 싸울 상대도 존재할 이유도 없어졌고, 스스로 자멸하게 돼 버렸다..
 
그러나.. 예수의 참사랑은 여기서 끝나거나 멈추지 않는다.
예수의 참사랑의 속성은.. 남을 위해 자기를 죽이면, 더 크고 온전함으로 스스로 다시 일어나는 능력과 힘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지신 십자가는 우리를 위해 자신의 참사랑을 죽인 십자가이지만, 내가 져야 할 십자가는 거짓 사랑인 자애를 죽이는 십자가이다.
거짓 사랑인 자애인 내가 죽어야 내안에 참사랑인 예수가 사신다.. 그래야만 예수로 그분을 닮은 참사랑의 존재로 회복될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 전체로 보면, 예수의 제자됨은 이것이라고 예수께서 직접 말씀하신 대표적인 부분은 두 곳애 기록되어 있다.

14:26 "누구든지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나 아내나 자식이나 형제나 자매나, 정녕, 자기 목숨까지도 미워하지 않은 채 내게로 오면 그는 나의 제자가 될 수 없느니라.
14:27 또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고 나를 따라오는 자는 나의 제자가 될 수 없느니라.
(누가복음 14장)

13:34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이는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13: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것으로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나의 제자인 줄 알리라."고 하시더라.
(요한복음 13장)
 
이 두곳에 말씀을 비교해보면, 하나는 부정적 의미로 말씀하신 제자됨이고, 또하나는 긍정적 의미로 말씀하신 제자됨이다.
또한 표면적으로 보면 내용상 다른 의미의 제자됨을 말씀하신듯 보인다. 허나 위에서 언급한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에 대한
설명으로 들여다 보면 같은 맥락임을 알 수 있다.

누가복음의 저 말씀에서 예수님은 왜 혈족관계의 사람들만을 지목하셨고 자기 생명까지 미워해야 한다고 하셨을까.?
우리가 이 말씀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고 넘어가야 한다. 이 말씀의 의미는 현대 심리학으로도 설명이 가능한 부분이다.
예수님의 저 말씀은 가족을 부인하고 버리고 무관심해지라는 의미가 아니다.
타락의 속성이요 본능인 자애(自愛)가 가장 극명하게 잘 들어날 수 있는 부분이 혈족애이기 때문이다.
 
내게서 나왔기에 분신이란 이름으로 사랑하려들고, 또 책임지려 한다.
또 하나, 타인의 이목으로 인한 자기 채면 때문에 사랑없이도 도의적 의무적 책임을 수행하려 한다..
자식의 꿈과 생각은 아랑곳하지 않고 내가 이루지 못한 꿈을 자식으로 이루게 해서 대리만족을 느끼려 한다.
이것이 과연 그를 위해 그를 사랑하는 것인가.?
혈족이 아니라면 그 조차 하지 않을것이 인간이다.
하나님은 선한 사람에게나 악한 사람에게나 비를 주신다 하신 예수의 그 사랑으로 바라보면, 이것 또한 자애이다..
 
부모에게 자식은, 내게 사랑하게 하시기 위해 나를 통해 나보다 조금 나중에 세상에 보내신 또다른 하나님의 사람이다.
내 소유가 아니다 이 말이다.
자식에게 부모란, 내게 사랑하게 하시기 위해 그를 통해 나를 보내셨고, 그를 나보다 조금 먼저 세상에 보내신 또다른 하나님의 사람이다.
내게 무엇인가를 주기만 하기 위해 존재하는 존재가 아니다.
상대가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예수의 사랑으로 바라보는 인생관이다.
가족의 사랑이건, 연인의 사랑이건, 친구의 사랑이건. 예수의 사랑으로만 해야 그를 위해 그를 사랑할 수 있다.
 
그러나.. 자애가 본능이 되어버린 타락한 인간에겐 모든것이 자기가 중심이기에, 이것에 대한 개념적인 의식은 소유할 수 있으나
그것으로 스스로 삶을 살아갈 능력은 없다.. 바로 이것이 '선을 행하고자 하는 내게 죄가 같이 한다'고 한 사도바울의 곤고한 사람..
곧.. 나의 모습, 당신의 모습, 인간의 실존적 모습이다..
 
그래서.. 그래서.. 예수는 말씀 하신다..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그래야 내 제자라고 말이다..
또, 예수는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내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라"..고.. 그래야 내 제자라고 말이다..
그래서.. 그래서.. 예수는 말씀하신다.. "내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는 것은 나를 따르는 제자며, 그러려면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나에겐, 예수의 사랑으로 사랑하는건 십자가다.. 자애인 내가 죽어야 예수의 그 사랑이 내 안에서 숨을 쉴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십자가에 못박아야 할 것은 자애이며, 죽어야 할 것도 자애이다..
그래야 참사랑인 예수로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철학적 의미의 아가페란 단어를 말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아가페란 말을 쓰지 않는다.. 왜냐하면..
아가페는 하나님만이 인간을 위해 하는 사랑이란 잘못된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내게 말하게 하시는 사랑은, 예수의 사랑이다.. 예수의 그 사랑은.. 나와 당신.. 우리의 원래의 모습이며,
우리가 해야 될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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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마치며..
이 글을 쓰는데 5일이 걸렸다.. 그만큼 내가 나를 걸러내야 할 것들이 많았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스스로 심리적 압박도 많았다는 반증일 것이다..
 
지금.. 하나씩 정리와 작업을 하면서.. 진짜 사랑이신 예수께서 같이 하시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요.
내가 진정한 사랑의 느낌과 감각을 느끼지 못하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임을 다시 절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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