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사랑은, 다른 이들을 위해 자기부인으로 가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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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사랑은, 다른 이들을 위해 자기부인으로 가난하다..
Level 10   조회수 549
2014-05-21 03:58:58


 

 

[들어가는 말씀..]

[마태복음 5장 3절~12절..]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흔히들.. 예수께서, 마태와, 누가복음에서, 산상수훈의 서론으로 말씀하신, 일명, 팔복에 관해, 설명할 때, 주어를, 인간이 받고, 누리는, '복' 이란 단어에만 두고 설명하려 들고, 조건으로 제시된 사안들은, 등안시하는 모습들을 수없이 보게 된다..
 
오늘부터, 나는, 예수의 계명, 사랑을 통해, 산상수훈을 다시 묵상하려 한다.
우선, 팔복에 대해 몇번에 걸쳐 글을 쓰려한다..
우선 우리가 주목해서 기억해둬야 할 부분이 있다.. 팔복은, 저 여덟구절 자체만을, 따로 떼어, 그것만을 설명하고. 해석하려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분명코, 팔복을 서두로 말씀해놓고, 그 다음에, 복 있는 자가 되는 방법과, 길을, 산상수훈 전체에서,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먼저, "심령, 곧, 마음의 가난" 을 묵상하고자 한다.
예수님은 팔복에서, 3절과 10절에서, 조건적 사안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주어지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그것은 바로 천국이다.. 천국..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 헬라어로 '가난'을 표현하는 단어는 '프토코스"(ptochos)와 '페네스'(pensen) 등으로 표현하는데,
후자는 소득이 있는. 상대적 가난을 말할 때, 쓰는 단어이고, 전자는 어떤 일도 할 수 없어서, 소득이 전혀 없는, 절대적 가난을 말할 때, 쓰는 단어이다..
마태복음 5장 3절은 프토코스이다..
 
그런데 여기서 "심령(마음)이 가난한 자"를 설명함에 있어서 흔히들 범하는 우가 있다..
즉, '마음(심령)'이란 말은 빼놓고, '가난'이란 말만을 강조해서, 단순히 외쩍이고, 물질적인 빈곤으로 인해, 누구한테도 내세울것 없고, 자랑할 것 없는, 상황과, 여건을 말하는, 소유하지 못한(않은) 자의 가난을, 얘기하려 든다는 것이다.
또한, 인간이 소유한, 모든 사리사욕과, 욕심을 버린, 심리 상태를, 가난이라고 얘기하려고 든다..

허나, 내가 깨닫는 것은.. 저 말씀은, 결코 겉으로든, 내면적으로든, 물리적 소유나, 어떤 심리적 소유의 상태에 의한, 가난만을 말함이 아니라, 마태복음 5장 11절 이하의 구절들을 보면, 곧바로 예수의 계명, 즉, 사랑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저 말씀은.. 물질적 소유가 없어서, 자랑으로 내세울 것 없는, 부정적 가난을 말 하거나,
자신의 사리사욕을 버려서, 자유롭게 된, 심리 상태만을 말 하는 것이 아닌,
11절이하의 명시 된, 행위의 삶을, 소유한 자가, 가난한 자이며, 그로 인한, 자기 부인을 뜻한다는 것이다.

나는, 내 글들에서, 예수의 사랑은, 에로스, 곧, 자애(自愛)가 없는, 오직 저이를 위해, 저이를 사랑하는, 상대만을 위한, 사랑이라고 말해 왔다.

여기서, 첫번째로 제시하신 복인, 3절, 심령(마음)의 가난은 천국..이라는 말씀과, 17절~20절을 연결해 보면, 단순히 소유에 의한 가난을 말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마태복음 5장 17절~20절..]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자아, 천국은 누구에게 주어지는가.
단순히, 재물을 소유한 것이 없어서, 자랑할 것 없는 자인가. 아니면, 자신의 욕심과 사리사욕을 버리고, 갖지 않으려는 자인가.
둘 다 아니다. 예수의 계명, 곧, 사랑으로 자기를 부인하고, 그것을 준행하는 자들이다.

여기서 한가지 더.. 천국을 소유 할 수 있는 또다른 사안.. 10절과도 연결 되어야 한다..
5장10절.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5장 20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너희 의이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우리는 여기서 반드시 물어야 한다.
"물질적으로 가난하다 해서 의로운가."..?
또는, "내 사리사욕을 버리고 욕심을 갖지 않는다 해서 의로운가."..?

아니,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은, 우리가 스스로 알고 있는 사실 아닌가.
도둑과 강도가 왜 생기는가. 소유한 것이 없어서다..
 
그렇다면, 가난, 그 자체는 의이가 아니다..
하나님의 의이의 기준은, 사람이 속한, 상황이나 조건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방법과 그로 나타난 모습이다.
계명을 지켜가는 삶이 의라면, 계명은 무엇인가.? 사랑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의는 사랑이다..
10절은, 바로, 그 의이, 곧, 그 사랑으로 인해, 핏박받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 천국이란 말씀이다.

"5장 17절..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이 말씀 이후에 하신 모든 말씀, 즉..

"형제에게 노하지 않는자,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지 않는자, 형제에게 미련한 놈이라 하지 않고 화해를 먼저 청하는자. - 5장 22절~24절.."
"이성을 향해, 눈으로 보는것조차 조심하고, 생각마저도 조심스러워 하는자. 아내와 남편에 대한 책임을, 충실히 끝까지 이행하는자.  - 5장 27절~32절.."
"무엇이든 맹세하지 않고, 자기에게 불이익이 된다 하더라도, 옳고 그름을 판단하려 애쓰고, 그것으로 말하는자.  - 5장 33절~37절.."
"악한 자를 멸시하여 대적하지 않고, 오른편 뺨을 맞으면, 왼편도 돌려주는자, 억울하게 모함으로 속옷을 달라는 이에게 겉옷까지 주는자,
자신에게 요구했던, 그 이상의 일을, 상대를 위해 해주고,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한, 상대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는자.  - 5장 38절~42절.."

"원수를 사랑하고, 나를 아프게 하는, 그를 위해, 기도하는자, 내가 돌려받지 못하고, 유익이 없어도 이 모든것으로 사랑하는자. - 5장 43절~48절.."

이 구절들에 대해서, 앞으로 계속 말하겠지만,
바로, 저 사람들이, 복 있는 자들이며, 천국을 소유케 될 자들이다. 현대어성경으로 보면, 행복한 자이다.
다시 말해, 저 모든것으로 삶을 살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가난한 자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위에 열거한 5장 22절~48절의 구절들을 살펴보자..
5장 1절과, 전체적 문맥으로 보면, 산상수훈은 1차적으로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말씀이다.
즉, 산상수훈은, 예수를 따르는 '제자도' 라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발 더 나아가, 저 구절들은, 다름 아닌, 바로, 예수님 자신이, 나와 당신을 위해 행하셨던, 자신의 사랑을, 그대로 설명하고 계시다는 사실이다..

또한, 저 구절들 어디에도, 자기 자신을 위하는 어떤 대목도 없다. 자신을 위한다면, 저 구절들과는 반대가 되어야 한다..
즉, 모세의 율법데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말이다.

다시 말해, 저 구절들은, 자기를 부인하는 구체적 방법들이면서, 동시에, 예수의 계명, 곧, 요한복음13장34절, 사랑을 지키는 구체적 방법에 대한, 설명이란 사실이다..

여기에 한가지 더.. 산상수훈을 통해 보면, 인간의 악함과 약함을 감안하고 배려한 모세의 율법을 정면으로 파기하시고 자기의 사랑으로 다시 세우시는 예수님을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랑이신 하나님의 진짜 뜻은, 그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수를 따르는 제자는.. "심령(마음)이 가난한 자"는, 곧, "자기를 부인하는 자" 이며, 예수 사랑을 준행하는 자이다..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예수가 임하실 수 있는 우리의 심령(마음)이 비워질 수 없고, 그로 인해 예수사랑이 나타날 수 없기 때문이다.
 
마태 16장24절, 마가 8장34절, 누가 9장23절.. 공간복음에 기록된, '자기 부인'..이란 말에 뜻을 헬라어로 보면,
(헬라어 성경 보기 출처 :
http://www.greeknewtestament.com )

부인하다(?παρνησ?σθω)를 아파르네사스토(aparnesasto)라는 단어로 사용한다. 이 단어의 어원은 아파르네오마이(aparneomai)인데.
이 단어는, '뭣뭣으로 부터' 라는 의미의 전치사, 아포(apo)와, 부인(否認)하다. 즉, 누가 22장57절, 베드로의 예수를 부인과, 같은 뜻을 담고 있는, 아르네오마이(arneomai)의 조합어이다.

그런데, 아르네오마이의 뜻은 '존재의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자기의 모든것, 즉, 생각과 마음과 뜻과 영과 혼과 육에 속한 자신의 모든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 그것이 자기부인의 뜻이며, 그것으로 말미암은, 비워진 상태가, 곧, 아무것도 갖지 않은, 가난한 자의 심령(마음)이다..

바로, 예수의 사랑으로 말이다.. 그게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가난해진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며, 그에게 주어지는 것이 "천국"이다 이 말이다..
또한 그에게 아래와 같이 하나님 안에 그가 있고, 그 안에 하나님이 계시게 되고, 서로 하나가 된다.

[마태복음 5장 45절~48절..]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요한복음15장 9절~12절..]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바로, 이것이,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천국을 주시고픈 가난한 자이며, 자신의 진정한 제자인 자기를 부인한 자이며,
그로 말미암아, 예수안에 그 분과 하나된 자이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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