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사랑을 통해 바라본 두가지 유혹 그리고 예수의 첫번째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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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사랑을 통해 바라본 두가지 유혹 그리고 예수의 첫번째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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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30 07:45:46

 
(대조할 신구약 말씀)

3:1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3:2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3: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3: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3: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3:8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3: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3:10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3:11 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3:12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3:13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3:14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3: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3: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3: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3:19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3:20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3: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3:22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3:23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3: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창세기 3장)
 
4: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4: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4: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4: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ㄱ)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신 8:3
4:5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4:6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ㄴ)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시 91:11,12
4: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ㄷ)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신 6:16
4: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4:9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4: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ㄹ)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신 6:13
4:11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4:12 예수께서 요한이 잡혔음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
4:13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4:14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4:15 ㅁ)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사 9:1,2
4:16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4: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마태복음 4정 1절~17절)
 
6:1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6:2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음이러라 
6:3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6:4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6:5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6:6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6:7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6:8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6: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6: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 
6:11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6:12 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6:13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6:14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6:15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요한복음 6장 1절~1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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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 글은,
조금은 복잡하기에 깊이 생각을 해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수박 겉 핥이 식으로 띄엄띄엄 건성으로 읽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지난 글들에 이어 하나님께서 마태복음의 산상수훈을 좀 더 깊이 말하게 하시기 위해 먼저 이 내용의 글을 쓰게 하심을 깨닫는다.
 
구약의 첫번째 책인 창세기 3장과 신약의 첫번째 책인 마태복음(기록 순서는 마가복음이 첫번째) 4장을 보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사람으로 인한 사탄의 두가지 시험 아니 정확히 두가지의 유혹이 기록되어 있다.
내가 판단하기론 과거와 현대를 비롯해 수 많은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이 이 부분을 비교하거나 분석해본 사람은 불행히도 전무하지 않을까.?란 생각을 하게된다.
왜냐하면 이런 내용의 강의나 설교를 단 한번도 들어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로마서 5장과 고린도전서 15장을 통해 언급한 내용 곧 "처음 아담과 마지막 아담"이란 표현을 미루어 생각해 볼 때,
오늘 내게 말하게 하시는 부분을 사도바울도 이미 깨닫고 그 깨달음 속에서 저 말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우선.. 마태복음 4장 17절을 보면, 예수 복음의 첫번째 외침이 기록되어 있다..
그 첫 외침은 다름아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이다.
흔히 대부분에 목사들은 이 구절의 목적어를 천국에만 두고 '그것을 얻으려면 회개하라'는 식으로 설교를 하고 가르친다.
또한, 회개의 기준점을 현재 삶에서 개인이 저지른 잘못된 그 행위 자체만을 기준점으로 삼고 그걸 중단하고 돌아서라는 식으로 말한다.
그져 사탄의 유혹에 빠진 아담으로 세상에 죄가 들어왔다고만 말하고, 그것이 원인이 되어 현재 인간이 죄를 짓고 있다고 말할 뿐, 그 선악을 알게하는 실과를 먹는 행위 자체가 무엇을 의미하며, 그 타락으로 인해 무엇이 인간에게 생겨놨으며 죄와 잘못이 무엇으로부터 기인되어 나오는지에 대한 구체적 언급도 없이 말이다.

그러나 저 구절의 목적어는 '천국'이 아니다. '회개'이다. 다시 말해, 천국은 우리 각자에게 다가와서 우리 각자가 맞이하는 것이지,
인간의 의지적 노력과 수양과 덕행으로 얻는 것이 아니란 것이다.
또한, 저 구절은 단순히 인간의 어긋나고 비틀어진 도덕성과 윤리성 자체만을 바로 잡고 뉘우치란 말이 아니며,
그 어긋나고 비틀어짐을 가져오도록 작용된 진짜 원인을 버려야 한다는 뜻임을 알아야 한다.
또한, 저 첫번째 외침은 예수님의 '열처녀의 기름' 비유와 상통한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될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인간이 갖고 있는 악의 뿌리는 무엇이라 말씀하시고, 또 무엇을 회개하라 하시는 걸까.?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이 첫번째 외침 이전에 있었던 사건을 똑바로 이해해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즉 "마 4:1~10"절 까지의 말씀이다.
이 말씀에는 사탄이 2가지 질문과 3가지 요구조건으로 예수님을 시험하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서 시험의 종류가 무엇이냐가 중요한게 아니고, 우리가 주목해야 할 문장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란 말이다.

저 말은 그져 단순히 예수님의 정체성를 묻는 의문의 구문()이 아니다. 사탄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고 있다.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말이다.
귀신들도 아는것을 천사장이었던 사탄이 모르겠는가.? 저 의문의 구문()은 비꼬는 어투의 반어법적 표현이다.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염두해둬야 할 부분은 우리가 알듯이 4복음서의 특징은 그 복음서가 읽혀질 대상을 미리 정해놓고 씌여졌다는 사실이다. 마태복음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 읽혀질 대상이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이 아니요, 유대인들을 위해 씌여진 복음서이기에 예수님께 대한 호칭을 그들이 받아드릴 수 있을 만큼만 조정해서 "하나님의 아들"이라 표현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예수님을 곧 그 하나님이시라 직선적으로 말하면 유대인들에게 반감이 일어날게 뻔하기에 직선적으로 예수님을 하나님이라 말하지 않고, 우회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 표현한 것이라 이 말이다.
바로 이 관점에서. 4장에 예수님께 던진 사탄의 저 의문의 구문() 또한 "하나님의 아들이라면"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면"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신이 그 하나님이라면.? 이 돌을 빵으로 만들고, 이 절벽에서 뛰어내려 보시라"..
이 의문의 구문()을 통해, 사탄이 예수님께 유도해 내려고 했던 그 진짜 의도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사탄의 저 의문의 구문()은 결코 예수님의 정체성을 묻는 구문()이 아니다. 저 의도는 창세기 3장과 연결해서 들여다 봐야 알 수 있다.
  
나는, 예수님과 사탄이 주고 받은 저 말들을 성령의 인도와 성경에 근거한 깨달음을 통해 반어법적인 시각을 동원해 사탄의 의도와 예수님의 뜻을 생각해보려 한다.
 
사탄의 시험(유혹) :
"당신은 이 모든 우주와 모든 물질을 창조하시고 당신의 거룩한 의로 질서를 세우신 하나님이신데, 어찌하여 당신을 거역한 당신을 알지도 못하는 저 사람들을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까? 자 여기 돌맹이들이 있는데 말 한마디면 이것을 빵으로 만들 수 있는 분이 당신 아닌가요.? 그렇게 지극히 높고 거룩하신 분이 한낫 흙가루일 뿐인 저들을 위해 뭘 하시려고 저들과 같은 흙으로 오신겁니까? 거룩한 의로 우주의 질서를 세우신 당신에겐 당신의 거룩한 의를 나타내는게 당신 자신의 뜻과 당신 자신을 위한 당신의 정체성을 들어내는거 아닙니까? 그렇다면 이 돌을 가지고 빵을 만들어서 그 옛날 만나를 하늘에서 내리신 분이 당신임을 세상에 알리시고, 이 절벽에서 뛰어내려도 죽지않는 분임을 저들로 보게 하셔서 저들 모두를 당신 발앞에 무릎 꿇게 하시고, 그것으로 저들을 심판하십시요, 내 말데로 따라주시면 이 세상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것을 당신께 되돌려 드리겠습니다. "

 

예수의 대답 :
"그래.. 내가 바로yeshuaˆ가 말했듯이, 내 말 한마디면 이 돌을 빵으로 만들 수 있을 뿐 아니라, 무슨 물질이든 세포 하나하나의 힘을 주어 수 없이 부풀어 늘어나게 할 수 있는 그가 나다.(오병이어).. 허나 니가 한가지 잊고 있는게 있구나.? 너는 어디서 왔느냐.? 너 또한 내 말로 인해 니가 존재하는거 아니냐.?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것들은 내 말로 인해 있어졌다는걸 너 스스로. 말했다. 그렇다면 내 말이 거짓이냐.? 내가 내 말을 버리겠느냐.? 내 말이 아니면 니가 존재할 수 없었듯이, 내 말이 아니면 사람도 살 수 없다. 여기 이 돌이든, 이 돌을 이용해 빵을 만들든, 그것이 곧 내 말이기 때문이다..

내 말을 거짓으로 만든것은 너다. 너는 사람이 무엇으로 창조되었고 그 본레의 속성이 무엇임을 알고서 그것과 정 반대되는 거짓으로 저들을 타락하게 만들었다. 그것이 곧 내 말을 거짓으로 만든것 아니냐.?
사람은 너의 속성과는 다른 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 곧 내 사랑이다. 내 사랑이 저 사람들의 속성이었다.
그러나 너는 내 사랑을 거짓으로 만들기 위해, 너를 위한 그 거짓 사랑으로 내 사랑과는 정반대로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위한 사랑을 하도록 그렇게 만들어 놨다. 니가 세상에 만들어놓은 저 수많은 종교와 우상들의 목적이 바로 자신을 사랑하도록 만드는 것이 그 목적 아니더냐. ? 나는 그것을 회복시키러 왔다..
또한 이 세상에 모든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너에게서 나왔느냐.?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것이 니 것이냐.?
내 말에서 나왔기에 내것이다. 나는 내 입에서 나온 내 말로 있어진 내것을 저 사람들에게 주었다. 그런데 니가 너의 그 거짓 사랑으로 저들에게서 빼앗아 갔다. 그것이 사탄 니 것이냐? 너는 도둑이요 강도요 사기꾼일 뿐이다. 너의 하나님을(내 사랑을) 시험하지 말라. 나는 너를 창조한 그 하나님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내게 깨닫게 하신 저 마태복음 4장 1절~10절에서 엿볼수 있는 예수님의 말씀과 사탄의 말의 뜻이다,
어떻게 저 짧은 말들을 통해서 저러한 의미를 찾을 수 있느냐 물을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 물음에 나는 이미 대답을 해놨었다.
 
빛이 있으라 하시니...
http://yeshua-ahava.com/y/?no=1266&cno=6


이 글을 통해서 말이다,
나는 윗 글의 일부를 이 글에 포함시켜 반복하며 다음을 이어서 말하려 한다.

그런데.. 예수님께 대한 이 유혹의 사건이 있기 아주 오래전, 이 유혹의 사건과 너무나도 모양세가 똑같이 닮은 사건이 있다. 그것은 바로 창세기 3장이다.
이 두 유혹의 사건은 그 결과도 틀리고, 유혹의 종류와 수도 틀리는데, 하나님은 왜 어째서 두 사건의 모양세가 같다고 내게 말씀하시는 걸까.?
자, 여기서 창세기 3장과 마태복음 4장을 한번 비교분석해보자.

첫번째 (창 3:1~3, 마 4:2~4)..
사탄은, 하와에게 말한다. '하나님이 너희에게 모든 실과를 먹지말라 하셨느냐?'..
그리고 예수님께 말한다. '당신이 하나님이라면 이 돌을 떡으로 만들라'..

이 두 구절을 표면적 또는 단적으로 얼핏 보면, 사탄은 인간이 갖고 있는 육체의 본능과 그 약함을 악용해서 먹을 것을 가지고 유혹했다고 해석해 버릴 수 있다.. 그러나 그런 해석은 너무나도 유아적인 해석일 뿐 근본적인 해석은 될 수 없다..

저 두 구절의 목적어만 보지말고, 주어를 보자.. 저 두 구절의 주어는 무엇인가.? 그 주어는 바로 "하나님"..이다..
다시 말해, 사탄의 표면적 의도와 목적은 사람에 대한 공격으로 보이지만, 아니.. 그것은 결코 사람에 대한 공격이 아니다.
정확히 저 두 구절은, 하나님께 대한 도전과 공격이며, 하나님의 의로운 말씀에 대해 무가치한 것으로 만들고, 거짓으로 만들려는 의도가 숨겨져 있고, 그 말씀에 대한 비꼬는 어투의 공격이란 것이다.

시탄은 너무도 간교하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말씀을 통해 창조된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혹을 품고 도전하게 만들기 위해, '하나님이 그리 말씀하셨는냐.?'..라고 묻는다.
반대로, 자기 형상으로 사람을 창조하신 예수님께는, 말씀 그 자체이신 예수님의 존제 자체를 무시하고 부인하려는 의도로..
'당신이 하나님이라면.?'.. 이라고 의문의 구문()을 내던진다..
 
사람에게 던진 사탄의 저 질문의 결과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존재의 목적과 자신의 존재됨 자체를 잃게 만들고 부인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게 되었고 사탄이 이긴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예수님께 던진 사탄의 저 구문()의 결과는.. "내가 곧 그 하나님이며, 그 말씀이다".로 끝난다..
혹자들는, 어떻게 마태복음 4장의 예수의 저 대답으로 "내가 곧 그 하나님이며, 그 말씀이다".라는 대답이라고
할 수 있느냐? 라고 내게 질문을 할 이들이 있을 것이다. 지금부터 그 대답을 하겠다..
 
사탄은, 예수님께 첫번째 구문으로 요구하는 시험을 한다. "당신이 그 하나님이라면 돌로 빵을 만들라."..고..
그런데.. 예수님은 17절의 저 첫번째 외침 이후, 공생애를 시작하신지 얼마 안되서 세례요한이 죽고난 직후.
수많은 사람들 앞에 창조주로써의 기적을 보여주신다..
바로 마태복음 14장과 4복음서에 다 기록되어 있는 오병이어의 기적이다.
우리는 여태 이 기적을 은사주의자들로 인해서 "예수를 믿는 자들에겐 이런 기적의 복이 따른다"..라고
기복의 예표요 기준으로 배워왔다.
 
그러나, 저 기적은 복의 예표나 기준이기 전에, 모든 물질과 생명읗 창조하신 하나님 자신을 증명하여 보여주신 역사이고, 하나님 자신의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들어내신 사랑의 역사였다는 사실이다..
이 기적은, 그 옛날 어둠의 힘으로 연금술사들이 행했던 속임수와 같은 거짓 기적이 결코 아니다.
이 기적은, 사탄이 구문()의 시험으로 예수님께 요구했던 그 요구에 대한 2차적 대답이면이면서 동시에 그 요구와는 차원이 180도 다른 기적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어째서 차원이 180도 다른 기적인가.?

예수님은, 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진정한 예수 자신의 사랑의 원리를 가르치신다.
바로, 요한복음 13장 34절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의 원리이다..
이 원리는. 진짜 참 사랑의 시작은 예수 자신이시고, 그 사랑은 시작은 작게 보이지만, 누군가에게 전해질 때,
상상을 초월하게 수없이 늘어난다는 원리이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상대를 위해 행하는 사랑일 때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께 한가지 질문을 드려야 할 부분이 있다..
그 질문은.. 예수님은 왜 어째서 '돌을 떡으로 만들라'는 사탄의 그 요구에는 오병이어와 같은 기적을 행하지 않으셨을까..? 이다.

자, 여기서.. 두번째로.. 창세기 3장과 마태복음 4장을 비교하며, 위 대답을 찾으려 한다.

우선, 창세기 3장을 보면, 타락 직후부터 사람에게는 한가지 심리적 특징이 생겨났다...
그것은 다름 아닌 "두려움"... 대체 무엇에 대한 두려움일까..?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창세기 3장 9절~10절)

많은 신학자들이 이 부분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하다.
나는 신학을 완전히 전공한 사람은 아니지만, 신/구약 성경을 비교해가며 설명을 하려한다.
위에 구절에는 단순하게 자신의 벗은 몸을 인식하므로 인해서 두려움이 생긴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선악과란 무엇이며, 그것을 먹기 전에도 분명히 자신의 몸에 어떠한 것도
걸치지 않고 있다는걸 인식하고 있었을텐데, 그것을 먹음으로 자신(자기를)의 벗은 것을 인식했다는 것이다.

선악과, 발가벗음, 두려움... 이 세 단어의 연결 고리는 어디서 찾아야 할까.?
그리고 정말 문자 그대로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이 물음은, 스무네살 때, 오직 사랑만으로 내게 회개를 이루게 하신 그 때, 내가 가졌던 질문이었기도 하다..

플라톤과 니체를 신봉하는 현대 철학자들은 '인간이 소유한 죄로 인한 두려움은 허상이고, 죄 자체가 없는 것이다'. 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그 말은 그들 스스로 자기들의 철학을 모순으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말이다.
동양철학이건 서양철학이건 철학의 근원적 시발점은 자기 자신이다. 곧 인간 스스로 자기 힘으로 하나님이 되겠다는 그것이 철학이기 때문이다.
철학에서 에로스가 빠지면 철학의 정체성을 상실하게 된다. 왜냐하면 에로스는 자애(自愛)이기 때문이다.
모든 철학은 바로 이 에로스(자애)로 부터 출발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창세기에서 부터 에로스 곧 자애는 거짓이요 그것 자체가 자멸하는 죄다. 라고 선언하신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2장 16절~17절)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창세기 3장 1절~5절)

어떤 이들은, 위에 구절로 어떻게 자애를 죄라 하쎴다 라고 해석할 수 있느냐? 이의를 제기할 것이다.

그런데, 위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구절과 사탄이 말하는 구절을 비교해 보면, 공통적으로 인간의 근원적 속성이 무엇이며 어떤 존재라는 것에 대한 언급이 내포되어 나온다.
그 문맥은 바로, 2장 17절 "
선악을 알게 하는"과.. 3장 5절 "선악을 알 줄
"..이다..
즉, 사람은 처음부터 선악을 구분 할 수 있던 존재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선한 존재로 창조하셨다면, 그리고 천사와 같이 선악을 구분 할 수 있는 존재로 창조하셨다면, 당연히 반대의 악을 인식하고 구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말은, 선악과를 먹으라 마라 하실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이미 선으로 반대의 악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사탄의 저 거짓의 미혹에도 결코 넘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왜? 선으로 악을 구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위에 두 구절로 보면, 맹자의 성선설도, 순자의 성악설도, 그렇다고 동서양의 여러 철학자들이 말하는
성무선악설도 아니란 것이다.. 
 
그렇다면, 선한 존재도 아니고, 악한 존재도 아니라면, 사람은 대체 어떤 존재일까.?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1장 26절~28절)

자, 바로 이 말슴의 그 해답이 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즉, 인간은, 아니 사람은, 하나님을 그대로 닮은 하나님과 같은 속성의 존재란 것이다.
이 말은, 사람은 천사들을 비롯해 다른 피조무들과는 완전히 구별된 존재로서의 가치를 부여받았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하나님 되신 근본 속성은 무엇인가?
 
공의.? 선(善).? 자비와 인자.?
아니다. 이것들은 하나님의 근본적 속성을 나타내기 위한 그 안에 속해 있는 한 부분일 뿐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사람을 창조하셨고, 하나님의 형상이 공의와 선이라면, 그 형상을 닮은 사람도 공의와 선으로
악을 구분 할 수 있었어야 한다. 그런데, 사람은 선악을 구분 못하는 존재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본질적 형상은 공의와 선이 아니라는 얘기가 된다.

성경에서 사도요한은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근본적 속성을 단 한마디로 일축하고 있다.
요한1서 4장,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고.. 바로 이 사랑이 하나님의 본질적 속성이며, 그 분의 형상이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신 자기 정체성.. 또는 하나님의 형상.. 즉 사랑이라는 것이다...
그 사랑은 인간 창조의 원리와 질서속에도 포함되어 있고, 하나님 자신의 형상.. 바로 그 사랑 자체를 닮은 존재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것인가?... 우리는 반드시 이 질문을 해야한다. 그래야 하나님을 닮은 나의 나 됨의 본질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대답은, 아래의 신구약 성경을 비교해야 얻을 수 있다.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구약, 레위기 19장 18절)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신약, 요한복음 13장 34절)

구약(율법서 포함)에서 하나님께서 사랑하라 하신다. 그런데 저 신/구약 두 구절에 사랑이 같은 사랑으로 보이는가.?
아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명령으로 보면, 전혀 다른 차원의 사랑이다.
예수는 말슴 하신다. "새 개명을 너희에게 준다"..고,
왜.? 어째서 새 계명일까.?
 
언젠가 내 글을 통해 말했듯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본레의 뜻이거나
최고 절대 사랑을 말씀한 것이 아니다.
자신에게서 벗어날 수 없는 자애가 본성이 되어버린 타락한 인간의 속성을 감안하신 하나님의 양보와 배려의 말씀이란 것이다.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구약에 이 말씀을 변형해서
신약에서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가 되었다.
이 말씀이 구약성경의 십계명을 포함한 모든 율법과 계명의 기초며 핵심이다.

그런데.. 자애가 본성이 되어버린 타락한 인간의 속성을 감안해서 주신 저 계명 조차도..
다시 말해, 다른 이를 자기처럼 사랑 하는것 조차도 제대로 할 수 없는 무능력함과 나약한 존재가 인간이란 것이다.
로마서에 사도바울의 논법데로, 하나님이 율법을 세상에 주셨던 이유는 그것을 지켜행하게 하실 목적이면서 동시에
또한 그것(자기처럼)조차 행할 수 없는 죄인 된 존재란 사실을 우리의 약함과 무능력으로 알게 하시려는 목적이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예수) 자신이 세상에 오실 수 밖에 없는 이유기도 한 것이다.
 
요한복음 13장34절, 예수님의 계명에는 '네 몸과 같이'가 없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이다..
즉, 예수님의 사랑의 기준은, '자애(自愛)인 네 자신과 같이"가 아닌, '창조주 하나님이신 무자애(無自愛)인 예수 자신의 사랑'이다.

바로, 예수 자신의 그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라는 뜻이며, 또한 창조주이신 자신이 그 사랑으로 자신을 닮은 사람으로 다시 회복시키시겠다는 뜻이다.
이 사랑은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로 완성하셨고, 또한 지금 이 순간도 그 분 예수가 완성해 가고 계신다.
종전에 쓴 글로 반복해서 말하면, 그 사랑의 완성의 주최는 우리가 아니다. 예수 당신이시다.
사람을 위한 이 회복은, 하나님의 형상 곧 사랑으로 창조된 그 사랑의 존재로서의 사람의 회복이며, 상실에 대한 회복이다...
그래서 예수의 계명은, 구약에서 말씀하는 사랑과 전혀 차원이 다른 새 계명인 것이다.
 
위에 신/구약 두 구절만으로도 하나님의 사랑은, 에로스(자애)가 아니고, 또한 그것은 전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위에서 말한바와 같이, 창세기 2장 16~17절은, 사랑에 정반대인 자애(自愛)는 거짓이요
스스로 자멸하는 죄라는 하나님의 뜻이 내포된 말씀이란 사실이 성립된다는 것이다.
 
자, 그렇다면,
에로스(자애)를 따르는 철학이 '인간이 소유한 죄로 인한 두려움은 허상이고, 죄 자체가 없는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죄 그 자체인 에로스(자애)를 부인하는 것이며, 자기들 스스로 자신의 철학을 모순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또한 저 말은, 스스로 에로스(자애)가 거짓임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사랑이 진짜요 진리임을 인정한 말이 아닌가 말이다.

나는 바로, 창세기 3장의 이 관점으로 마태복음 4장을 다시 보려한다..
자, 여기 신/구약의 사탄의 말을 비교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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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3: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창 3:4~5)
 
4: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
4:5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4:6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ㄴ)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시 91:11,12
....
4: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4:9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마 4:3, 5~6,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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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두곳에 사탄의 말을 분석해 보면, 사탄이 무엇을 목적으로 하고 있고, 그 목적을 위해 어떠한 모양세의 수단과 방법을 쓰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사람에게 사탄은 말한다..
"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라고.
 
그리고 예수님께 사탄은 말한다.
"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고, 여기서 뛰어내리라
"..라고.. 말이다..
 
자, 그런데.. 여기서 나는 모두에게 질문 하나를 던지려 한다..
도대체 사탄은, 누구를 위해서 저것들을 하라 하는 것인가.?
 
사탄의 저 말들 속에는, '하나님'이라는 말 말고도 숨겨진 공통 분모가 있다.

 
"너희가 하나님처럼 되려면 너희 자신을 위해 저것을 먹으라. 그러면 하나님처럼 될 것이다.
당신이 하나님이라면 당신 자신을 위해, 자기를 들어내기 위해, 떡을 만들고 여기서 뛰어내려라.
그러면 당신이 그 하나님이란 것이 증명될 것이다.."

자, 보이는가.? 창세기 3장과 마태복음 4장의 저 두가지 사탄의 유혹이 같은 모양세를 하고 있다는 것이 말이다.
즉, 다시말해, '
너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그것을 하라..
'.. 이것이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께 사탄이 유도해내려고 했던 그것이다.
 
왜.? 상대방으로 하여금 그 자신을 사랑하도록 만들어 버리는 그것이.. 상대를 무너트리고 파개하는 가장 큰 기본적인 힘임을.. 또한 그것이 하나님의 심판과 버려짐의 진짜 이유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사탄 자신이 자신을 위해 스스로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하나님께 대항했던 자기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버려짐의 결과로 자신을 통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탄의 의도와 목적과 그것을 위한 수단이 무엇임을 아시기에, 사탄의 저 유혹의 요구를 대적하신 것이다..
사탄은 '니가 하나님이라면 너를 위해 돌을 빵으로 만들어 하나님임을 증명하라'고 요구했지만,
예수님은 결코 자신을 위해 그 요구를 행하지 않으셨고, 사람들을 위한 그 사랑이 이유가 됐을 때,
저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셨다.
이러하기에 저 오병이어의 기적은 사탄의 요구에 대한 2차적 대답이지만, 그 요구의 목적과는 완전히 180도 다른 목적의 기적인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사탄을 '거짓의 아비'라고 지칭하셨다.. 예수님의 말씀이 옳다.. 사탄은 스스로 거짓이 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목사들은, 창세기 3장의 저 구절을 해석하며 이러한 말들을 한다.
"
사탄은 저 말에서 다 진실을 말하다가 끝에 죽지않는다고만 거짓말을 했다.
"..고 말이다..
그러나, 목사들의 그 말도 거짓이다.. 즉, 사탄은 죽지않는다고만 거짓말을 한것이 아니다.
'저것을 먹으면 하나님처럼 선악을 안다'.? 이 말 자체가 거짓말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나님처럼 선악을 구분할 수 있는가.? 아니.. 아니다..
하나님이 구분하시는 선악은 결코 자기 사랑을 위해 구분하는 선악이 아니며, 오로지 상대를 위한 사랑이 선악을 구분하는 기준이기 때문이다.
 
반면, 인간의 선악의 구분은 어떠한가.?
내게 도움과 유익이 되면 그것이 선이고,  내게 손해와 피해가 되면 그것이 악이다..
또한, 다른 이들에게 피해와 손해가 되도, 내게만 그 손해와 피해가 없으면 선이고,
다른 이들에게는 유익과 좋은 일이라 해도, 내게만 유익이 안되고 안좋은 일이면 그것이 악이다. 
이것이 인간이 선악을 구분하는 거장 큰 골격이 되는 이유다..
이래서 인간은 지금 이 순간도 진짜 선악을 구분 못한다.. 한마디로 자신이 선악의 기준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과연 하나님처럼 선과 악을 구분하는 것인가.? 사탄의 저 말 또한 거짓말이다.
만약, 사탄의 저 말이 진실이었다면, 사람 또한 하나님처럼 선으로 악을 구분해내서 악에서 멀어졌어야 했다.
그런데, 하나님처럼 선악을 구분할 수 있는 인간이.. 왜 살인을 하고, 왜 도둑질을 하고, 왜 간음을 하는가?
그것도, 하나님의 종이라고 떠벌리는 이들이 왜 그런것을 탐하는가.?
 
어떤 이들은 나의 이 말을 반박하기 위해, 같은 창세기 3장 22절을 들먹일것이 뻔하다.
"3:22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허나. 구약 히브리어 원문을 보라. 사탄의 저 거짓말과 22절의 저 뜻은 분명히 다르다.

우리의 구원론부터 다시 정립해야 한다. 죄로부터의 구원이라면 죄가 무엇이며 원인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단순히 아담이 선악과를 먹어서 세상과 사람속에 죄가 들어왔다가 아니라. 선악과를 누구를 위해 먹었느냐를 따지면 결국 자기를 위해 먹은건데 진짜 죄는 선악과를 먹은것 자체가 아니라 自愛가 없으신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이가 자기를 위해 그렇게 했다는것 자체가 죄인데, 행위만 죄라 여기니 문제라 이 말이다.

대체 우리는 무엇을 회개하고 무엇을 버리고 있는가.? 죄의 원인인 사탄의 그 거짓 사랑인 자애(自愛)인가.?
그 원인의 부산물인 나의 행위 뿐인가.?
 
"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
바로 저것이, 예수님이 외치신 저 첫 외침, 회개하라 하시는 기준이며 이유다.

예수님의 이 첫번째 외침을 다시 되새겨야 한다.. 분명코 예수님의 저 첫 외침은 원인의 부산물인 행위만을 말씀한 외침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첫 외침 이후, 바로 이어 마태복음 5장에서..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5: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자기를 사랑하는 자는, 결코 남을 위해 자신을 비우고 가난한자가 될 수 없고, 의와 예수의 사랑을 위해
핍박받는 자가 될 수 없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를 수 없다.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 모두가 진짜 회개하고, 진짜 버려야할 것은, 살인도, 간음도, 도둑질도 아니다.
바로 이 죄들의 근원인 자애(自愛)이다..
이것을 기준으로 회개하고 자기를 버리지 않으면,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의 그 사랑을 헛되게 만드는 것이며,
천국은 그에게는 주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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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글을 읽는 어떤이들은, 내가 성령도 없이 인간의 성경지식으로만 그럴듯하게 말한다고 한다.
그런데.. 과연 성경이 인간의 지혜와 지식과 명철로 깨달을 수 있는 부류에 속하는 책인가.?
인간의 지식과 지혜로 깨닫고 알 수 있는게 성경이라면, 일년에 수십독 하는 사람들은 어째서 내게 말하게 하시는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가.? 그들은 세상 지식과 세상 경험으로 따지면, 나보다 수천배 앞에 있는 사람들인데, 그 지식과 그 경험으로 왜 이것을 깨닫지 못하는가.?
 
성경은, 가르치는 자가 없으면 아무리 머리가 좋고 수없이 읽어도 모르는것이 성경이다.
내가 말하고 쓰는 글들은 세상 목사들이 말하지 않는 것들이며, 이런 내용의 책도 없다.
그렇다면, 나를 가르치시고 깨닫게 하는 이가 누구인가.? 사탄이 예수의 사랑을 말하게 하겠는가.?
자기가 쓰고 있는 어둠의 전술전락을 들어내게 하겠는가.? 영분별 똑바로 하라.
 
요한복음 14장 16절~26절, 고전 12장 3절~20절.. 다시 읽어 보라.. 성령만이 예수를 가르치실 수 있는 분이다.
 
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12:4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12:5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12:6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12:7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12:8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12:9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12:10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12: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12:12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12:13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12:14 몸은 한 지체뿐만 아니요 여럿이니 
12:15 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12:16 또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니 
12:17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냐 
12:18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12:19 만일 다 한 지체뿐이면 몸은 어디냐 
12:20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고전 12:3~20)
마 10: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요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 13: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14:7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14:8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14:9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14:10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14:11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14: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14: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14: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14: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4: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4: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14:19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14: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14:21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14:22 가룟인 아닌 유다가 이르되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 
14:2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14:24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14:25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14:28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더라면 내가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라 
14:29 이제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은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요 14:6~29)
 
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15: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15: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15: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15: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15: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15: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5:14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15: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15:17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
(요 15: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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