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사랑은, 다수를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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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사랑은, 다수를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지 않는다..
Level 10   조회수 174
2015-12-13 07:37:00

*** 예수의 사랑은, 다수를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지 않는다..***
 
위에, 제목의 의미를 오인하지 않기를 바란다.
성경의 구절도 악용하는 사탄이, 하찮은 인간이자 장애인인 내 말과 글들을 역 이용해 먹지 않을까 우려하기에 그것을 방어 해 놓기 위해서 지금 이 글을 쓰려한다.
 
성경을 표면적으로 봤던 사람들은 위에 제목을 의야하게 여길것이 사실이다.
전 인류의 죄 사함을 위해서 예수 한분이 죽으셨다는 구원논적 개념이 박혀 있는 사람은 말이다.
그러나, 분명히 인류의 구원의 시작과 길은 오직 예수께서 이루셨지만, 그 완성은 예수를 따르는 우리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져서 나는 없어지고, 오직  예수께서 우리안에 살아계시도록 순종하지 않으면 완성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 완성을 위한 우리의 죽음은, 결코 나 한사람만을 위한 완성의 죽음이 아니다.
내가 죽어야 다른 사람들도 구원의 완성을 이루도록 돕는 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그것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특권이요 책임인 예수의 사랑이다. 내가 죽지 않으면 예수를 보여줄 수 없기 때문이다.
내 삶으로 예수를 보여주지 않으면, 모든 전도는 헛일이다.

바로 이 개념으로 저 제목을 이해하길 바란다.
 
작년 11월에, 종교와 정치의 유착을 불허하는 건국 이념과 법을 깨고,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 의회에서 로마 교황이 연설을 했다.
그 내용중에 다른건 다 거두절미 하더라도 내 얼굴을 굳어지게 했던 한 부분을 지적해 말하려 한다.
 
교황은, 각 분야에서의 인간에와 자연보호와 평등한 분배를 말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새로운 인권 보호를 위한 새질서와 제도적 장치가 있어야 하고 그것을 위해 다수를 위한 개인의 희생은 필수 불가결이다." 라고 말이다.
 
언뜻 들으면 참 그럴듯 하고, 인간애가 참 많은 좋은 말처럼 보인다. 허나 저 사람의 저 말은 예수에게서 나온 그 복음의 말이 아니다.
창세기 3장에서, "너를 위해 살면 니가 하나님이 된다".했던 사탄의 그 속임수와 똑같은 속임수의 말일 뿐이다. 가장 인간을 위하는척 하지만, 그 의도는 중세기 때와 한가지로 전 인류를 자기 말 잘 듣는 애완동물로 만들겠단 의도임을 알아야 한다.
 
저 사람이 말하는, '다수'와, '개인'이란 말 속에 내포된 대상과 목적은, "부자나 권력을 가진 사람이 자기 것을 희생해서 가난한 자와 나누라"는 뜻으로 보고 있는 우리들의 생각과는 완전히 다른 의도와 뜻이다.
"모든 종교에는 구원이 있고, 하나의 목적을 향해 갈 뿐이다." 라고 연설했던 사람이 교황이다. 바로 그것을 위해, 그 새질서를 위해, 법을 만들자 이 말이고, 그 법과 질서를 만들어서 그 법 안에 있는 다수를 위해, 유대인들이나 우리들과 같이 하나님과 예수만 바라보는 근본주의자들로 불리는 소수의 개인에 대한 희생은 필수불가결하다는 말임을 파악해야 한다 이 말이다.
 
바로 여기에, 하나님께서 내게 말하게 하신 예수의 타주도적 사랑을 역 이용해서 가면을 덧쓰고, 예수는 빼버리고, "너와 다른 것을 사랑하라"는 식으로 말을 하게 된다면, 하나님보다 더 인간을 사랑하고 위하는 것처럼 보이게 될 것이다. 바로 이것이 예수로 가장한, 또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 사탄의 모습이다.
 
이러니 내 얼굴과 표정이 굳어지지 않겠는가.? 마치 예수의 믿음은 빼버리고, 내가 믿기만 하면 천국간다고 거짓을 교리화 해놓은 칼빈주의와 똑같다 이 말이다.
 
이 글을 통해 다시한번 분명히 말하지만, 진짜 사랑은 오로지 예수의 사랑이며,
진짜 타주도적으로, 나와 다른 이질적인 사람을 위한 사랑을 할 수 있는 능력과 힘은, 자애(自愛)로 타락한 인간에겐 없기에 불가능하며, 내가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서 타락한 옛사람인 자애(自愛)를, 그리고 나를, 부인되어진 내 속에 예수가 같이 하셔야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인간의 자애적 사랑은 거짓이다. 그것은 사탄에게서 나온것이기 때문이다.
 
명심하자. 예수 없는 사랑, 예수 없는 평화, 예수 없는 인간애는 가짜다..
예수의 그 사랑은 단순한 공평이거나 박애가 아니며,
서로 사랑하게 만들어주는 사랑이고, 예수를, 곧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닮아가게 하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이래서, 예수를 믿지 않고, 수박 겉핥기로 성경을 보고 말하는 사람이나, 예배당은 나가지만, 예수로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은, 성경을 자신의 자신을 위한 삶과 비교하면, 예수의 그 사랑은 인간의 힘과 의지와 능력으로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바로 이것이 근본 이유가 돼서, 예수를 인간이 만들어낸 신화와 꾸며진 존재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고, 그것으로 조작하려는 사탄의 술수대로 조정당하는 이유이다.
 
다시 말해, 어느 한쪽만 희생하는 것이 예수의 사랑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말한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너희를 위해, 내 몸에 채우려 한다"고,
왜냐면, 바로 이것이 다른 이들로 하여금 예수를 본받게 만들어주는 시발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예수의 그 사랑의 계명과 복음의 완성이기 때문이다.

 
저 사람이 말하는 인간애 또는 평화나 박애.. 그것은 사탄의 술수와 계략의 한 부분이다.
사탄 자신이 하나님보다 너희를 더 사랑한다 라는 거짓이기 때문이며, 그것을 보여주기 위한 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황이란 하수인을 통해서 그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든 종교에는 구원이 있다며 환심을 사서 예수가 없어도 된다는 거짓 의식을 심어주고, 인간은 평등하다며 동성애를 용인하도록 만들어서 그것으로 죄를 덮어주는 척하며 환심을 사기 위해, 겉으로는 나와 다른 것을 사랑하라 외치지만, 자신의 말을 거부하면, 고발하게 만들어서 서로를 찌르게 만드는 거짓 사랑.. 그것이 사탄의 사랑 자애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탄은 절대, "나와 다른 것을 사랑하라"는 말은 겉으로 내놓고 크게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면, 그 말을 하는 순간, 자신이 세상을 조정해 법을 만들고, 그 법을 이용해서 죄인으로 취급하는 근본주의자로 부르는, 우리와, 유대인들도, 사랑해야 하는 대상으로 인정해야 하기 때문에 모순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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