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기를 우상으로 만들지 말라. ** 오늘날 마태복음의 예수님의 비유처럼, 예수를 믿는다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외쳐대지요. “내가 주의 이름으로 병을 고치고,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고, 주의 이름으로 행하지 않았습니까.?” 라며,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고, 공로를 들어내는 이들을 수 없이 많이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시편 115편에서 시편 기자는 위와는 정반대의 고백으로 하나님께 요청을 올립니다. 1절~3절까지 문맥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한 일이 아니고, 우리를 위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주께서 이루신 것이오니 우리에게 영광을 돌리지 마시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소서.”. 라고 요청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실 내가 한 것도 아니지만, 내가 한 것이라 말해 버리면, 하나님은 없어지시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우상을 섬기는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은 없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자는, 우리에게 영광을 돌리지 마시고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시라고 요청을 하고 있는 겁니다. 또 하나, 115편의 전체적 문맥을 자세히 보면, 이 시가 씌여질 당시에 상황을 엿볼 수 있습니다. 사람의 손으로 깎아 만들고 새긴 수공품을 하나님이라 섬기고 복을 구하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일으키게 하는 목적이란 것입니다. 왜 기자는, 9절~10절에서 이스라엘과 아론의 집을 언급했을까요.? 이스라엘은 일반 열두지파에 속하는 모든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고, 아론의 집은 제사장들을 말하는 겁니다. 그러면, 기자는 왜 이들에게 하나님을 의지하라 했을까요.? 저들에게서 정반대의 모습을 보고 하는 말이 아닐까요.? “너희가 복을 빌기 위해, 너희 손으로 만든 그 우상의 재료가 하나님이 만드신 물질인데, 그것들을 만드신 하나님은 버리고 아무 가치도 없는 물질을 하나님으로 섬기느냐.?”..이것입니다. 이 115편의 주제는 “복을 받기 위해서 하나님만 섬기라”가 아닙니다. 이것은 사람의 본질적 도리입니다. 복은 그 섬기에 대한 부수적 결과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우리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고 내가 이루었다 한다면,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이 될 수 있을까요.? 그 짓이 곧, 예수님의 비유처럼 주의 이름을 이용해서, 나를 우상으로 만드는 짓입니다. `그런 자들에게 예수님은 말씀 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도무지 모른다.(너희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지옥으로 꺼져라.”.. “내 이름으로 했다고.? 내 이름으로 했으면 내가 한 것이지 니가 한 것이냐.? 그것이 나와 다른 이들을 위한 것이었느냐.? 너 자신을 위한 것이었느냐.? 니가 너의 우상이 되어 너를 위해 한 것이 아니냐. 우상은 거짓이며 존재가 없다. 나는 그런 존재는 인정하지 않는다.”.. 라는 뜻으로 말입니다. 우리는 툭하면, 순종을 말합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면 일신이 편하게 되고 복을 받는다 말하면서 말이지요. 그런데 과연 그게 진짜 순종일까요.? 진짜 순종은 내가 없어집니다. 나를 위한 모든 바램이 없어진다 이 말입니다. 그런데 순종하면 내가 원하는 데로 되고, 일신이 편해지고, 복을 받는다고요.? 아니요. 예수님은 정반대로 말씀 하십니다. 마 10:22, 또 너희는 내 이름으로 인하여 모든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을 것이라.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미움을 받는 자.. 이것이 순종하는 사람의 삶의 모습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미움을 받는 것일까요.? 일신이 편해지는데 미움을 받는 것이 편한 걸까요.? 미움을 받는 게 내가 원하는 복일까요.? 그러면, 왜 미움을 받을까요.? 자기를 사랑하는 세상 사람들과는 정반대로 자신을 위해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