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성품의 특징은 자애(自愛)가 없는 온유와 겸손이다. 겸손, 나는 상대보다 못한 존재란 사실을 인정하고 나를 낮추며 상대를 섬기며 사랑하는 것. 온유, 상대는 나보다 나은 존재란 사실을 인정하고 바라보고 나보다 상대를 높히며 섬기며 사랑하는 것. 이것이 예수님의 성품이며 특징이고 자신을 통해 배우라 하신 섬김의 자세이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오늘 이 시간, 나를 비롯해, 예수를 믿는다는 이들을 본다... 예수님이 배우라 하신 온유와 겸손은 커녕.. 교만과 우월감과 이기주의로 가득해서 나 잘낫다하는 인간들을 본다.. 요즈음 나는, 얼마전부터 한분 밖에 안계신 외숙모님과 메일을 주고 받고 있다.. 서울로 이사 온 집에 외삼춘과 같이 오셨다가 가시더니, 그 다음날 어머니께 전화로 내 메일 주소를 가르쳐 달라하셔서 가르쳐 드렸더니 바로 메일을 보내셨다. 내 나이 7살인가? 8살인가? 외삼춘과 결혼하셔서 어린 꼬맹이때부터 나를 아셨기에 얘쟤로 대하셨었던 분.. 그런데.. 내게 보내신 메일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조카님'이란 호칭과 합께 내게 경어를 써주시는 것이 아닌가... 그 메일을 받고 숙모님께 감사 드리면서도, 이제 나도 나이가 먹었다는 사실을 새삼 느낄 수 있었고 내 삶의 책임감 마져 느껴지는 걸 내 자신에게서 보았다. 외삼촌 댁은 교회를 다니지 않으시는 집이다... 내가 꼭 하나님께 인도해 드려야 할 분들이다.. 내가 비록 장애인이지만 나이를 먹었기에 "성진아"가 조카님이란 호칭으로 바뀌고, 경어로 대해 주시는 외숙모님.. 그런데 어째서 왜 예수도 믿지않는 숙모님과 내 주변에 예수를 믿는 다는 사람들이 비교가 되는 걸까...? 예수를 믿고 따른다 하면서 마태복음 11장 29절은 어디다 내팽겨쳐 놓고, 상대가 자기보다 못해 보이면 단박에 야자로 대하고 위에 군림하려드는 인간들.. 예수를 복이나 내리는 우상으로 만들고 있는 인간들... 예수의 섬김은 어디에 있는가.? 믿는 이들이여.. 아니, 믿는다 하는 이들이여~! 예수의 섬김을 알기나 하는가.? 오즘 나는, 교회의 아는 동생이 무료로 홈페이지 제작 교육을 자기 아는 사람에게 시켜달라 부탁을 해와서 하고 있다. 그 사람은 29살의 장애인이다. 나하고 17년이나 나이 차이가 난다.. 그 사람은 예수를 거부하는 무신론자다.. 그런데 나는 결코 그 사람에게 얘쟤로 말을 놓지 않는다... 이것이 예수 믿는자의 본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며, 예수 믿는 다는건 곧 예의를 지킨다는 것이다. 그것이 그를 구원에 길로 인도하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하신 인생관, 가치관은 그렇다. 저 사람은, 나를 사랑하기 위해 존재 하는게 아니라. 내 사랑을 받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나는, 저 사람의 사랑을 받기 위해 존재하는게 아니라, 저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이것이 내 가치관이며 인생관이다. 우리 각 개인은 사랑받고, 섬김받기 위해 존재하는게 아니란 말이다.. 이것이 내게서 배우라하신 예수의 모습이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란 ccm의 원레의 뜻을 사람들이 잘못 알아듣고 있다. 이 ccm은, 상대에 대해 내가 바라보고 느끼는 상대에 대한 존재의 소중함을 고백하므로 상대로 자존감을 느끼게 해주는 내용이다. 자기 자신에게 적용할 내용이 아니란 말이다. 이 곡은. 나와 같은 동호회에 회원이었던 어느 전도사님이 쓰신 곡인데, 이 곡이 발표되기 몇개월 전에, 내가 "사랑을 준비하는 이에게 쓰는 편지"란 글을 발표 했었다. 추정컨데, 이 곡은 내 글을 보고, 시각을 다르게 뒤집어 쓴 내용이란 느낌이 든다. 다시 말한다. 인간은 사랑받기 위해 존재하는게 아니다.. 사랑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형상 곧 사랑의 존재로 창조된 인간의 존재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