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같은 장애인 자식을 둔 우리나라 부모들 뿐 아니라, 이 지구상에 장애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하는 그 어느 곳이나 장애라는 결과 앞에 공통적으로 느끼고 의식하는 관념이 있음을 본다. 첫번째.. 그것은 장애를 곧 죄로 인한 결과적 부산물로 의식다는 것이다. 아니, 장애의 원인은 여러가지일 수 있지만, 장애라는 결과 자체를 죄 그 자체로 의식한다는 것.. 사람들의 이런 보편적 의식은 성경에도 잘 나타나 있다. 마가복음 10장, 눈이 보이지 않는 "바디메오"라는 사람의 이 이름 자체가 실명이 아니라, "죄인의 아들"이란 뜻을 가진 별명이었다는 사실이고, 요한복음 9장, 또 한사람의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을 놓고, 예수님의 제자들은 "저 사람이 앞을 못보는 이유가 본인의 죄 때문입니까, 부모의 죄 때문입니까" 라고 예수님께 묻고 있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경을 통해 예수님의 관점으로 보면, 장애 그 자체는 결코 죄가 아니다. 장애가 죄가 되려면, 나를 위해 어떤 수단과 방법과 도구와 정당화로 자신의 장애 자체를 죄를 짓는 도구와 방법으로 이용해야 죄가 될 것이다. 내가 장애를 가져서 못해보는 것이라 하면서, 모든 사람이 나쁘고 그릇된 일이라 말하고 피하는 일들인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하게 해달라며 지나친 요구를 한다면, 자기의 그 장애를 죄의 도구로 이용하는 것이기에 말이다. 만약, 지금 내가 하는 이런 말을 비장애인들이 장애인들 앞에서 한다면, 돌에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해야하는 말이기에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말이지만, 나는 말 할 수 있는 자격이 있기에 한다. 내가 곧 중증 장애인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나 라도 안하면 말 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결코 이론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나의 삶에 태도와 시각을 달라지게 할 수 있고, 모든 사람들에 대한 태도와 바라보는 시각과 관계까지도 달라지게 할 수 있음을 인지했으면 좋겠다. 제자들의 저 질문에, 예수님의 대답은 3절 한구절로 보면 아주 간결하게 끝나는듯 보인다. "본인이나 부모의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다"라고, 그러나, '영광을 위해' 라는 말은 개역판 성경들에도 없는 말이다. 성경에도 없는 이런 말들을 덧붙여 놓은 사람들의 그 심리를 보면, 하나님의 경윤과 계획을 곧 인간이 만들어 놓은 숙명론과 결속시켜서 사람인 자신의 책임은 회피해 버리고 모든 책임을 하나님께 떠넘기려는 심리에서 나온 말들임을 알아야 한다. 요한복음 9장을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제자들은 예수님께 저 사람이 장애인으로 태어난 원인 자체에 대해 묻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의 질문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과 차원에 대답을 하신 것을 다음 구절들을 통해 헤아려 볼 수 있다. 예수님의 저 말씀은, 저 사람이 장애인이란 존재로 태어난 그 자체에 대한 과거적 의미를 말씀하시는게 아니라, 이 사람 자체(곧 모든 사람이..)가 세상에 존재하는 진짜 이유를 말씀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하고, 또한 현재 이 사람이 처한 상황과 여건을 통해, 이 사람 안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시고자 원하신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맞는다 본다. 즉, 예수님은 장애인이냐 비장애인이냐로 사람을 보시는게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형상으로 창조된 각 사람의 근본적 존재의 목적과 이유로 바라보고 계심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각 개인이 소유한 재정적인 여건이나, 지적인 능력이나, 명애나 권력이 있거나 없거나 아무 상관 없다. 그가 사람으로 존재하는 하나님의 이유와 목적으로 사람을 보실 뿐이다. 다만, 하나님은, 사람이 자기 의지로 만들어 놓은 상황과 여건과 조건들(비록 악에 속한다 해도, 그 길에서 돌이킨다면)을 사용해서 자기의 선한 일을 이루시는 분임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분명코 운명론과는 거리가 먼 개념이다. 왜냐면, 근본적으로 인간에게 발생된 모든 정신적 육체적으로 나타나는 병리적 증상들의 근본 원인은 아담에게 주어진 자유의지로 자신이 선택한 그 선택이 원인이고, 그것에 대한 결과적 부산물로 모든 피조물에 악영향이 발생되어져서 정신과 육체에 각종 병으로 나타났기에, 인간이 선택해서 만들어 놓은 상황과 여건과 결과들을 놓고 그 책임을 하나님께 떠넘길 수 없기 때문이다. 흔히들, 자기의 잘못으로 발생된 결과에 대한 책임을 면하기 위해, 하나님의 뜻이니 계획이니 하면서, 운명론을 같다 붙이고, 또는 자기에게 조금이라도 손해가 되거나, 자신의 잘못된 뜻을 굽혀야 할 상황에 처하면, 자유의지를 운운하면서 자기만을 내세우는 이들을 본다. 허나 그런식으로 자유의지와 운명론을 자기 유리한 쪽으로 갖다 붙이고 자기 합리화로 이용하려드는건 결코 옳지 않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인간에게 하나님을 닮은 사람으로 살아가는 방법과 길과 결과는 제시해 놓으셨지만, 결코, 모든 사람이 속한 상황이나 조건을 미리 만들지 않으신다는 사실이다. 왜냐면, 하나님의 사랑의 형상은 로봇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사랑은 자발적 의지로 발생되어져야 하고, 그 의지의 선택에 따라 모든 상황과 조건이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는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에 의해 미리 정해진 운명론이나 또는 숙명론은 없다. 다만, 자의든 타의든 사람들의 의지로 선택해서 만들어놓은 상황과 조건에 따르는 결과만 있을 뿐이다. 또한 이 결과는, 내 의지의 선택이 저이를 위한 것이냐,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냐에 대한 결과로 나타나는것 뿐이다. 하나님은 바로, 그 사람이 자기 의지로 만들어놓은 상황과 조건을, 사람들을 향하신 자기의 사랑의 뜻과 경륜을 이루시는 도구로 이용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지혜다. , "본인이나 부모의 죄 때문이 아니라 " , 인권 운동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