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25여년 전부터 써 놓은 시와 글, 그리고 이 홈페이지에 올려진 글들을 다 읽고 정확히 내 글의 뜻을 파악한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하셔서 말하게 하시는 사랑이 무엇임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람 창조에서부터, 예수님의 구원과 심판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것의 기준은 하나님의 사랑이 기준이요. 그 사랑은, 타락한 인간이 소유하고 있는 그릇된 거짓 사랑인 자애(自愛)는 철저하게 배제하고 부인하고 있다는 사실과, 또 그 자애(自愛)가 없으신 진짜 사람의 근원이신 창조주 예수의 그 형상, 바로 그 사랑의 형상으로 다시 회복 되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는 것과, 또한 그 사랑 자체는 타락의 속성인 자애를 소유하고 있는 우리의 인간의 의지와 힘으로 이루는 것이 아닌, 오직 예수께서 우리안에서 성령을 통헤 이루고 계심을 말하고 있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우선 글을 더 써 내려가기 전에, 마태복음과 요한복음의 말씀을 적어 놓는다.
------------------------- 25:31 인자가 영광에 싸여 모든 천사를 거느리고 와서 영광스러운 보좌에 앉을 때에 25:32 모든 민족이 불려 나와 인자 앞에 모일 것이다. 그때 내가 마치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갈라놓듯이 사람들을 갈라서 25:33 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둘 것이다. 25:34 그리고 왕인 나는 내 오른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 아버지께 복받을 사람들아, 와서 천지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한 이 나라에 들어가라. 25:35 너희는 내가 배고플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 되었을 때에 너희 집으로 따뜻하게 맞아들였다. 25:36 또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병들었을 때와 감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와 주었다.' 25:37 그때 그 의로운 사람들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이 배고프신 것을 보고 잡수실 것을 드렸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25:38 또 언제 주님이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도와 드렸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렸습니까? 25:39 언제 주님이 병드셨거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찾아가 뵈었습니까?' 25:40 그러면 왕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너희가 여기 있는 내 형제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곧 내게 해준 것이다!' 25:41 그리고 나는 왼편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너희 저주받은 자들아, 내게서 물러가 마귀와 그 부하들을 가두려고 준비한 영원한 불속으로 들어가라. 25:42 너희는 내가 배고플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으며, 25:43 나그네 되었을 때에 따뜻하게 맞아들이지 않았다. 또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지 않았고 병들었을 때나 감옥에 갇혔을 때에도 찾아와 주지 않았다.' 25:44 그러면 그들도 대답할 것이다. '주님, 주님이 언제 배고프고 목마르셨으며, 나그네 되고 헐벗으셨으며, 병들고 감옥에 갇히셨던 일이 있었기에 저희가 보고도 돌보아 드리지 않았다 하십니까?' 25:45 그때 왕이 말할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여기 있는 내 형제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주지 않은 것이 곧 내게 해주지 않은 것이다.' 25:46 그리하여 그들은 영원히 벌받을 곳으로 쫓겨날 것이고 바르게 산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갈 것이다." (현대어성경, 마태복음 25장 31절 ~ 46절) 요14:10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요14:11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요14: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요14: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요14: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요14: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요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요14: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요14: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요14:19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요14: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요14:21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요14:22 가룟인 아닌 유다가 이르되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 요14:2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요14:24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요14:25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요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요한복음 14장 10절 26절) ----------------------
오늘 나는 좀 심각한 문제를 놓고, 질문부터 먼저 던지고 글을 쓰려한다.. 나는 모두에게 묻는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말미암은 구원인가.? 아니면 인간의 의지에서 나온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인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을 하기 전에, 믿음의 정의부터 다시 해 놓아야 할 것 같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내가 바라보는 믿음, 그것은.. 인정(認定)이다.. 무엇에 관한 인정인가.? 1. 나와 당신을 자기의 형상 곧 사랑으로 창조하신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의 선하심과, 그의 공평하심과, 그의 심판하심과, 그가 곧 그 사랑 자체이심에 대한 인정.. 2. 나와 당신은 시간과 공간의 제한속에 있는 나약한 존재이며, 하나님의 형상인 진짜 사랑을 잃어버린 그래서 타락의 속성인 자애를 하게 된 죄인이란 사실에 대한 인정, 따라서 인간의 그 어떤 자애적 수단과 방법(윤리,도덕,종교적 행위와 그 어떤 심리적 상태에 있다 하더라도)으로는 결코 하나님과 그 나라를 바리볼 수 조차 없다는 사실에 대한 인정.. 3. 예수의 하나님 되심과 사랑 자체이시며 창조주이신 예수께서 이루신 구원의 역사와, 그 분이 우리안에서 말씀과 성령으로(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자기의 진짜 사랑의 형상을 다시 우리에게 이루고 계시단 사실에 대한 인정.. 4. 바로 그 인정 속에서 내 삶에 대한 하나님의 경륜과 뜻과 이루시는 모든것을 그 분의 사랑의 눈과 마음으로 바라보려는 태도의 믿음과 예수의 계명에 대한 순종으로 믿음의 확증... 이것이, 내가 바라보는 믿음의 정의다.. 이와 같은 인정이 없이는 결코 믿음의 시작 조차도 못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저 모든것을 인정할 때, 진짜 자기 부인이 가능하며, 예수만이 내 안에 사실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믿음이란 하나님과 '나'와의 극히 개별적 관계(구원)를 확립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으로 보이는게 사실이다. 허나. 분명히 해둬야 할 일이 있다. 믿음은 결코 내 의지와 지식과 논리에 대한 신념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2:1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2:2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2: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2: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2: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요한계시록 2장 1절~5절) 계시록에 이 말씀은, 우리에게 주시는 성령에 의한 통찰력이 필요한 말씀이다. 이 말씀에서, 에베소 교회는 예수 그 이름을 위해, 참음과 인내와 부지런함으로 수 많은 이단과 악을 용납하지 않으려 애를 쓴 흔적을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에베소 교회는 이런 과정을 거처 오면서 뭔가로 부터 벗어나고 변질이 있었다는 위앙스가 4절에서 느껴지고 있다는 것이다.. 대체.. 무엇이 변질 되었고, 무엇으로 부터 벗어난 걸까..? 우리가 다 알듯이. 믿음은.. 사도바울의 표현데로(롬 10:17)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듣는 것은 예수의 복음의 말씀이다. 2천년 전 초대교회에서 부터, 오늘 이 순간까지 예수의 복음의 말씀이 전해졌고, 그 말씀으로 교육되어져 왔다.
그런데, 문제는.. 그 가르침과 교육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관념화가 되고, 지식화가 되고, 논리화가 됨으로 개인과 집단에게 믿음이 아닌 신념이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떤 결과를 낳겠는가.? 예수의 그 사랑안에 있는 믿음이 아닌, 내 지식이.. 내 관념이.. 내 논리가.. 내 신념이 절대화 되서 그것을 기준으로 상대를 계산하고 평가하게 된다. 그게 2천년 전에도, 오늘날에도.. 신앙생활을 오래하고 믿음이 있다하는 이들의 단적인 특징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자신이 믿음이라 생각하고 있고, 지식,관념,논리화가 되어 있는 그 신념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그 역사를 제한해 버리는 우를 범한다는 것이다. 즉, 내가 갖고 있는 신념에 맞지 않는 모든것은 그것이 분명코 성경 말씀이라 하더라도 받아드리지 않고, 적대시 해버리고 외면해 버린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인간이 가진 자애에서 나온 믿음이란 이름을 뒤집어 쓴 신념의 실체다.. 내가 신념하는 그것만 따라가려고 하는 그것.. 그것은 믿음이 아니다. (분명히 이 부분은 내게도 있을 수 있기에 지금도 성찰하는 부분이지만) 다시 말해, 계시록의 저 책망의 말씀은, "너희가 이단과 악을 대응하기 위한 방법으로 사용한 그것은 내 사랑안에 있는 그 믿음으로 한것이 아니라, 너희들이 갖고 있는 지식/관념/논리인 신념으로 한 것 뿐이다.".. 이런 의미로 받을 수 있다는 것이고.. 또 그렇게 들리지 않는가.. 말이다.. 그래서 4절에 말씀하신다..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자.. 요한1서 4장으로 가 본다.. 사도요한은, 요한1서 4장에서 예수를 전한다 말하는 이들에 대한 진의를 가려내는 방법중에 가장 중요한 부분을 제시해 주고 있다. 그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사랑'이다.. 요한1서 전체를 보면, 헬레리즘(곧 인간의 의지와 노력으로 구원 또는 신이 될 수 있다는 철학사상)이 기초인 영지주의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구절들을 찾아볼 수 있다. 4:10 이러한 하나님에게서 우리는 참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참사랑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 아니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우리 죄 때문에 진노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벌하시는 대신 사랑하는 외아들을 희생제물로 내주신 데서 나타났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사랑의 극치입니다. (현대어성경, 요한1서 4장 10절)
위에 말씀에서 중반절을 주목해야 한다. "참사랑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 아니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왜, 사도요한은.. 저 말을 할 수 밖에 없었을까.? 사람이 왜 하나님을 믿고 섬기려 하고, 또 왜 사랑하려고 하는지.. 자신이 경험한 예수의 사랑이 거울이 되고, 성령의 가르침을 통해, 사람들의 그 속성을 파악하고 알았기 때문이다.. 인간의 그것, 의지와 노력은 결코 사랑일 수도, 믿음일 수도 없다는 것을 말이다.
내가 구원 받기 위해 하나님을 사랑하려 드는 것이 사랑일 수 있는가.? 그것 자체가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을 사랑하는게 아니다. 자기 자신을 위한 행위일 뿐이다. 그래서 사도요한은 더욱 강조하는 것이다. 진짜 참사랑은 하나님이시고, 나로 사랑케 하시는 성령의 인도로 바로 그 하나님 예수의 사랑으로만 사랑하라고.. 그것이 구원받은 자녀의 증거요, 제자됨의 증거라고 말이다.. 자,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진짜 믿음은 무엇이냐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단 한마디로 말 하려 한다... "절대적 기쁨의 관계".. 라고, 말이다.. 이 말은 청소년 시절때 내가 하나님과 나 사이에서 느꼈던 관계를 표현한 말이다.. 이것은, 그만큼 내가 믿음이 있었다는 말이 아니다. 오로지 하나님께서 자기가 내게 느기고 께신 그것을 내 속에 넣으셔서 나로 그것을 그 관계를 느끼게 해주셨다는 얘기이다.
바로 이것이 믿음이다. 내 의지와 지혜로..? 절대 아니다.. 믿음 자체도 하니님의 것이다.. 내것은 하나도 없다.. 만약에 그 당시에 내가 다른 아이들처럼 학교를 다니면서 세상에 지식을 쌓고 있던 아이었다면, 하나님께서 내 속에 그렇게 깊게 임재하실 수가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깨닫기에 말하는 것이다.. 내것이 아니라고.. 그런데 오늘날.. 믿음이라 부르는 신념을 가진 이들을 본다... 지식화 논리화 관념화 되어 있는 신념... 하나님과의 저런 관계를 느껴보지도 못한 상태에서.. 믿음이라 부르지만, 자애적 지식과 논리에서 나온 인간의 신념으로 예수를 내 구원의 도구와 수단쯤으로 여기는 이들.. 그것은.. 그것은.. 결코 믿음이 아니다.. 바로 그 신념이란 거짓 믿음이 나중엔 어찌 변하는지 아는가..? 한마디로 나의 공로로 여기게 된다.. "내가 이 만큼 믿고 십일조/건축헌금/구제봉사를 했으니, 내 믿음의 증거이고 축복은 당연한거고, 구원은 따놓은 거다."..? 이런 사람이 자기 뜻데로 안되면, "내가 얼만큼 교회에다 했는데".. 라며 자기 공로를 내세울 사람이다. 내 뜻데로 될 줄로 신념하고 기도하는건 믿음이고, 하나님의 뜻을 묻고 기다리는건 믿음이 아닌가.? 어느 쪽이 진짜 믿음인가.? 이것으로 구원 받을 수 있겠는가.? 우리 스스로 다시 물어야 한다..
위에 적어놓은 마태복음의 비유의 말씀을 보라.. 오른쪽과 왼쪽으로 사람을 가르신 기준을 보라. 믿음인가.? 사랑인가.? 분명히 저 비유에 나타난 양쪽에 갈라선 사람들 모두 믿음이 있는 사람들이다. 왜냐.? 예수를 믿는 사람과 아닌 사람들로 기준을 삼아 갈라 놓으셨다면, 소자의 말씀은 안하셨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 양쪽 다 믿는 사람들이기에 그 믿음의 확증이 있느냐 없느냐를 기준으로 갈라놓은 것이다. 우리가 뭔가 착각하고 있는게 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다는 오해이다.. 저 비유에 등장하는 사람들에 구원의 조건이 믿음이었다면 전부 천국에 가야한다. 허나, 예수님의 승천 직전에 주신 명령만 보더라도(마 28장 19절~20절) 내가 분부한 명령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하신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게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전적인 주도이며 은혜이고. 믿음은 그 구원에 대한 응답이다. 내 의지에서 나온 공로화 된 믿음으로의 구원은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믿음 자체도 예수의 복음의 말씀이 선포되고 들려지는 그 곳에 성령의 역사로 발생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믿음의 확증이 곧 사랑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말한다... 13: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고전 13장 2절) 바울은 이 말씀에서 분명히 행동을 의미하는 살아 있는 믿음을 말하지만, 그것마져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 말한다.
진짜 믿음은 예수의 사랑안에 있어야 한다.. 내가 내 의지와 지식과 지혜로 믿으려 하는 그것은 믿음이 아니다.. 예수가 내 사랑이 되셔서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시고, 그 사랑안에서 나로 믿게 하신다.. 16:15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6: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마태복음 16장 15절~17절) 믿음은.. 예수를 앎은.. 하나님이 주신다.. 그게 믿음이다. 그 다음이 결단이고 순종이다.. 이 결단과 순종 자체도 성령의 인도 없이는 인간의 의지로는 진실할 수가 없다..
예수를 내 구원의 수단과 도구로 만들지 말자.. 그 분과 우리의 관계는 결코 이용의 관계가 아니다. 바로 그 분, 예수가 곧 내가 되시게 하자.. 그리고 그 분이 내 안에서 행하시게 하자.. 그것이 예수 믿는다는 것이다.. 또한, 사랑과 믿음을 내 공로라 착각하지 말자. 내게 사랑이 되셔서 사랑하게 하시고, 믿음이 되셔서 믿게 하시는 분은 오직 예수이시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