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의 계명 vs 관습이 된 율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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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계명 vs 관습이 된 율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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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12 03:01:32

*** 하나님의 계명 vs 관습이 된 율법 ***

 

성경은 어느 부분이나 다 마찬가지이지만, 마태복음 15장과 같은 기사를 읽고 설명을 할 경우, 글의 문맥을 통해, 어느 부분에 초점과 관점을 맞춰서 보고 설명하느냐가 중요합니다.

 

1~9절까지만 읽고 끝나버리면, 표면적으로 봤을 때, 바리세인들은 부모 공경을 안 해서 예수님께 책망을 들었다로, 부모 공경에 초점이 맞춰진 얘기인 듯 해석하고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손 씻는 얘기로 시비를 거는 바리세인들의 얘기부터 시작해서 다시 예수님의 손 씻는 얘기로 끝나는 20절까지를 한 문맥으로 봤을 때, 예수님의 관점을 부모 공경으로 국한시키려 해선 안 된다고 봅니다.

 

3절에서 표현한 전통이란 말은 헬라어 파라도시스(paradosis)”라는 단어인데, 이 말은 단순하게 조상들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문화적 또는 지형적 조건으로 발생 된 습관과 같은 전통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지적하신 사람의 전통이란, 하나님의 계명을 인간의 자기 편의주의로 잘못 해석해서 교리화 시켜서 그것을 행하고 가르치고 습관이 되어버리게 한 잘못 해석된 율법입니다.

 

제가 이 글로 설명하기 전에, 전에 써놨던 글을 먼저 드린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 글에서 말씀 드렸듯이, 왜 하나님께서는 레위기 19장에서 사람사랑과 하나님사랑을 반복적 교차로 말씀하실 수밖에 없었을까요? 그 이유가 바로 이런 문제 때문이란 겁니다. 자애(自愛)로 타락한 인간의 속성은 자기에게 이득이 될 부분만을 부각시켜서 그것만을 지키려 할 것을 하나님은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5~6절에서 이런 의미를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너희에게 유익이 되고, 사람들에게 자랑하기 위해, 또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만을 받기 위해, 그것을 위한 예물은 갖다 바치면서, 사람들에게 들어나지 않고, 너희 자신에게 아무 이익이 안 되는 부모에게는 아무런 신경도 안 쓰고 있다. 부모는 너희가 살펴줘야 할 1차적 대상인 또다른 이웃이다. 너희가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을 섬기느냐.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을 먼저 섬기지도 않으면서 어찌 하나님을 섬긴다 하느냐. 너희의 그것은 결코 하나님을 위해 섬기는 게 아니다. 너 자신을 위한 것뿐이다. 하나님의 계명은 참으로 상대만을 위한 목적과 의도의 사랑이다. 하나님사랑과 사람사랑은 결단코 분리되어져선 안 되는 계명이다. 그런데 너희는 그것을 너희 자신을 위해 분리해 버렸다. 손 씻는 게 그렇게 중요하느냐, 참으로 중요한 것은 사람의 형식이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형상으로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며 의도이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를 위한 의도와 동기와 목적으로 하나님과 사람들을 대하고 있습니까.?

상대를 위한 겁니까. 자신을 위한 겁니까.?

 

하나님의 성전은 우리입니다. 내가 없어지지 않고, 내가 죽지 않으면 하나님은 내 안에 함께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같이 하실 수 없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마음도 내안에 들일 수 없다는 말입니다.

왜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시고 살피시는 분은 오직 상대만을 위하시는 사랑이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이 내 안에 함께 하실 때만이, 내가 다른 이들의 마음을 살피고 헤아려 줄 수 있으니까요.

 

그러기 위해서 나는 예수와 함께 십자가의 못 박혀 죽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분이 내 안에서 자기의 사랑의 일을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교파로 인해서 수많은 교리가 만들어져 왔습니다. 그런데 그 교리들 때문에 성경을 똑바로 보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순복음은 “5중복음과 3박자 축복이란 교리를 말하고, 감리교는 자유의지론적 구원을 교리로 말하고, 장로교는 예정론적 구원을 교리로 말합니다.

 

그런데 이 교리들의 공통점이 있는데, 그게 무엇일까요? 그것은 저 바리세인들과 같이 성경을 자기 편의주의로 해석하고 자기에게 유리하게 교리를 만들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성경이 아니지요.

또 하나의 공통점은,

저 교리들은 다, 예수님이 사랑의 능력과 믿음의 행위에 주체가 아니라, 인간인 내가 주체가 된 자애(自愛)적 교리라는 겁니다.

 

왜냐면

예정론에 의거한 믿음, 아니, 인간의 신념으로 아무렇게나 추잡하고 막되게 살고, 사랑 없이 살아도 택함 받은 사람은 그저 믿기만 하면, 천국 간다고 생각하는 것도 타락한 인간의 본성인 자애(自愛)에서 비롯된 이기적 해석이고,

 

자유의지론의 의거한 인간의 의지적 행위로 구원이 완성 된다고 생각하고, 그것에 얽매여서 성령의 능력과 임재를 외면하는 것도 타락한 인간의 본성인 자애(自愛)에서 비롯된 자기 자랑과 공명심을 위한 이기적 해석이고,

 

이 세상에서 내가 받을 복만을 추구하며, 그것을 얻기 위해, 사랑과 믿음을 도구와 밑밥쯤으로 여기고, 하나님을 자신을 위한 이용대상물로 말하는 “5중복음과 3박자 축복교리도 타락한 인간의 본성인 자애(自愛)에서 비롯된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기 위한 이기적 해석이기 때문입니다.

 

과연, 저런 인간의 편협함을 통해 나온 잘못된 성경 해석으로 만든 저러한 교리에 상대만을 위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의 계명이 있을까요.? 없습니다.

 

한마디로, 저 교리들 다, 예수는 없고 인간이 중심이 되서, 한쪽은 순종의 사랑 없는 구원, 한쪽은 내 공로적 응답의 구원, 또 한쪽은 내가 할 건 없고, 구원은 당연하고 세상에서의 복은 덤이란 식으로 말하기에 저 모든 것이 다 자애(自愛)가 출발점이다 이 말이지요.

 

바로 예수님은 저런 자기 자신만을 위해 하나님의 계명을 잘못 해석해서 만들어놓은 인간의 교리들을 지적하신 겁니다.

사랑도, 믿음도, 행위도, 인간인 내 것이 아닙니다. 예수의 것입니다. 그것으로 내 안에서 능력이 되셔서 이루시는 것이고,

다만 나는, 내 안에서 역사하시는 예수님께 순종으로 응답하는 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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