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택함은 하나님, 택함을 지킴은 사람.. *** 사무엘상 16장 전체 문맥을 통해 우리가 주위 깊게 생각해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오늘은 제 몸 상태가 안 좋아서 간단하게 써드리겠습니다. 우리가 다 알 듯이 사울왕은 하나님께 직접 택해져서 이스라엘에 초대 왕이 된 사람입니다. 그런데요. 오늘날 교회들이 말하는 예정론과 비교하면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한번 택하면 어떤 일이 있어도 버리지 않고 끝까지 천국가게 한다는 게 예정론인데, 이 본문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을 버리셨습니다. 그것도 왕을요. 주의 종을 말입니다. 예정론이 맞는다면,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사울을 잡아놓고 회개시키셨어야 합니다. 택했으니까요.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왜요.? 하나님의 사랑은 결코 강제적인 걸 원하지 않으시니까요. 제가 이런 말을 하면, 구약과 신약은 다르다. 라고 하면서 걸고 넘어갈 이들이 분명 있을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모든 말씀은 히브리적 관점을 통한 구약성경에 대한 재해석입니다. 누가복음 14장 16절 이하 말씀에도 같은 적용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잔치에 초대 받은 자들을 택함 받았다, 로 본다면 말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도 버려집니다. 이유는 자기애로 자신을 위해, 자유의지로 인해 초대에 대한 거절 때문입니다. 이런데, 한번 택한 사람은 무슨 죄를 지어도 천국가게 한다는 예정론이 맞을까요.? 아니요. 예정론을 주장하는 이들은 툭하면 고전2장7절을 들먹이며 ‘천국 갈 사람은 만세 전에 택했다’고 말합니다. 허나, 그런 말은 문맥을 보지 않고 하는 말이고, 그 문장 자체에도 그런 의미가 없습니다. 2:4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2:5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2:6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요 2:7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2:8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2:9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2: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저 구절은, 천국 갈 사람을 택해 놨다는 말이 아닙니다. 1장 19절~25절까지 만이라도 쭉 읽어보세요. 1:19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1:20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1: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1: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1: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1: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1: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럼 하나님의 지혜란 뭘까요? 예수님입니다. 사람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의 지혜 곧 예수님을 만세 전에 구원자로 정해 놓으셨다는 말입니다. 천국 사람은요. 하나님을 닮은 사람들입니다. 자신을 위하는 그 어떤 의식도 없고, 상대를 위하는 그 마음과 의식만 있는 사람들입니다. 지금 우리는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날마다 자신과 싸우며 예수께서 내 안에 계시게 하려고 준비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사울과 다윗의 차이점은 뭘까요.? 같은 하나님께 택해져서 같은 기름부음을 받고 왕이 되었고, 어찌 보면 다윗이 사울보다 더 간교한 큰 죄를 지었는데, 하나님께서는 다윗은 왜 버리지 않으셨을까요.? 이유는 한가지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영이 내 안에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라는 마음이 다윗에게는 있다는 말입니다. 사울도 분명히 하나님의 영이 임하고 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울은 자기 속에 계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을 위한 의도와 뜻으로 일을 진행하려 했고, 하나님은 다윗을 왕으로 기름부으신 후에도 사울에게 회개할 수 있는 시간을 거의 10여년 가까이 주셨지만, 사울은 끝에 가서 무당을 불러다 놓고 귀신을 부르는 짓까지 하고, 하나님을 인정 안하고 죽습니다. 왜요? 자기 자신 때문에요.. 그러나 다윗은 밧세바로 인해 나단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의 책망을 들으며 시편51편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의 모든 죄들을 사하실 분도 하나님시고, 나의 마음을 새롭게 창조하실 분도, 내 안에 바른 영을 새롭게 하실 분도, 하나님의 영이시오니, 주의 임재로부터 나를 내어쫓지 마시고 주의 거룩한 영을 내게서 거두어 가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주의 자원하는 영으로 나를 붙드소서.” 라고요.. 즉, 다윗은 자기를 인정하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의 임재하심만을 인정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다윗을 버리지 않으시고, 내 마음과 합한 자라 하신 이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