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yeshua-ahava.com/bd.php?board=yeshua&category=6&set_shape=webzine 내게 하나님이 같이 하시지 않는다면, 과연 저런 글이 나올 수 있을까.? 더욱이 난 유치원도 못나온 무학자다. 누구처럼 이것을 나 잘랐다는 식으로 방송이나 타고 떠벌려야 하나님이 같이 하신다고 인정하겠는가? 뭐.? "하나님 중심?", "회개?.. 나는 묻는다. 누구를 위한 하나님 중심인가? 자기 자신인가? 하나님을 위한건가? 결국,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복받으려면.."으로 끝나는게 설교의 골자다. 이게 오늘 우리집에 심방와서 목사가 내뱉고 도망간 소리다. 말은 하나님 중심이라 하면서, 그 의도와 뜻의 목적은 하나님 앞에 잘 보이고 아부해서 복이나 받자이다. 이게 자신을 위한 자기 중심이지 어찌 하나님 중심인가.? 진짜 하나님 중심은 예수의 사랑의 형상을 닮아가려 애쓰는 삶을 소유한 사람이 하나님 중심이다. 진짜 회개가 뭔지 아는가.? 그져 내가 살면서 물리적 행위로 저지른 그릇된 것들을 뉘우치는게 회개가 아니다. 그 행위의 근원이요 타락의 근원인 자애(自愛)를 내어던지고 예수를 닮아가는게 진짜 회게다. 그런데 그 근원은 그대로 놔두고 행위 자체만 뉘우치고, 예수의 모습도 전혀 없는 그게 회개인가.? 그것은 하나님을 기만하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을 말할때, 민수기 21장에 놋뱀을 들먹인다. 그런데 그 놋뱀을 처다보고 살아난 사람들 중에 천국의 예표인 가나안 땅에 들어간 사람이 있는가.? 여호수아와 갈렙 말고는 없다. 저 놋뱀을 보면 살것이라 하신 말씀을 믿고 처다보고 살아난건 죄로부터의 구원이라 봐야 옳다. 그런데 왜 그렇게 살아난 사람들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는가.?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지 않아서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나는 자기 자신을 위해 지키는 율법주의자가 아니다.. 엄밀하게 따지면 내가 아닌, 자신을 위해 '하나님중심'이란 말로 포장해 놓은 당신들이 바로 그 율법주의자들이다.. 에베소서 1장에 사도바울의 말을 보자. 1: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1: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1: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1: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4절을 주목하자. "그리스도 안에서" 와, "사랑 안에서"가 분명히 구분되어 있다. 다시 말해, 예수안에서 택하시고, 사랑안에서 거룩하고 흠 없게 하신다. 과연 내가 무엇을 회개해야 하는가.? 내가 믿음을 부정했는가.? 예수를 부인 했는가.? 예수 믿음이라 하지않고 예수의 사랑이라 말한 것이 잘못인가.? 그렇다고 내가 이 몸둥이로 도덕적 윤리적 죄를 지었는가.? 당신들의 잘못을 감싸주지 않고 지적한다해서 그것이 내가 교만하다 여겨서 그런가.? 그렇다면, 사도바울의 이 말은 무엇인가.? 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4: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4: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엡 4:13~15) 5:1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5:2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엡5:1~`2) 믿음은, 자기를 사랑하는 그것을 죄로 인정하고, 예수가 나의 구주심을 인정하는 구원의 시작이지 구원의 끝이 아니다. 구원의 완성은 내가 가진 내 믿음으로 되는게 아니다. 이스라엘이 훗날 놋뱀을 우상으로 만들고 하나님보다 그것을 숭배했듯이 바로 이런 생각과 의식이 예수를 내 구원의 도구와 우상으로 전락시키는 이유라는걸 왜 깨닫지 못하는가.? 명심하자 예수가 구원의 도구가 아니라 믿음이 구원을 시작하는 도구다. 그 구원의 완성은 예수의 형상을 온전히 이룬 그에게 주원진다. 예수를 믿는것으로 끝나선 안된다. 예수를 따라가야 하고, 우리 모든것이 예수를 닮아가야 한다. 예수가 하나님의 형상이시듯, 예수만이 우리의 형상이시기 때문이다. 그의 사랑 말이다. 천국이 어떤곳인데 감히 예수의 사랑 없는 자가 가겠는가.? 뒤에서 검색어나 게시물 조회로 비겁하게 말하지 말고,
내 앞에 나타나서 내 잘못을 구체적으로 말해보라. |